중국
9일 오후 7시 인천 남동구 미추홀도서관에서 열린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시민강좌에서 손승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연구교수가 '중국가정의 혼인과 상속'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미추홀도서관 제공

근대이전 적용 중매로 6례 진행
처와 지위 차별 '첩'은 계약관계
초췌·초부 포함 대를 잇는 존재
상속은 '계승' 형제만 균등 분할

법 바뀌어도 관습 지속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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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인천시 미추홀도서관, 경인일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2019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시민강좌 '저자에게 듣는 중국 이야기'의 마지막 강좌가 8일 오후 7시 인천 남동구 미추홀도서관에서 열렸다.

이날 강좌에서는 손승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연구교수가 2018년 쓴 '중국의 가정, 민간계약문서로 엿보다'(학고방)를 주제로 중국가정의 혼인과 상속에 대해 강연했다.

■ 다음은 강연 요지

근대 이전 중국의 혼인제도는 대체로 친영제가 적용됐다.

친영제는 신랑집에서 신부를 맞아 혼례를 올리고, 시집살이를 시작하는 것으로 남성 집안을 중심으로 한 혼인 양식이었다.

중국의 혼인은 중매인의 주선으로 6례에 따라 진행했다. 특히 6례 가운데 마지막 단계인 친영에서 혼서(혼인 증명서)를 받는 관습이 있었고,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중국에서는 결혼하면 그 당사자가 관할 관청에서 등기를 하고, 결혼증을 발급받는 것으로 혼인이 완성된다.

중국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남편은 해, 아내는 달이라고 간주됐다. 원칙적으로는 일부일처제였지만, 실제로는 일부다처였다. 남성은 첩을 둘 수 있었고, 첩은 뭇별에 비유됐다.

그러나 처와 첩은 원래부터 다른 신분이었으며, 다른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처는 정식 아내로 혼인할 때 꽃가마를 타고 들어오지만, 첩은 꽃가마를 타고 들어올 수 없는 존재였다.

대신 계약서를 쓰는 계약관계였다. 첩은 대를 잇기 위해 존재했고 사회적으로도 공인됐다. 축첩의 관습은 중화인민공화국 혼인법으로 완전히 폐지됐지만, 개혁개방 이후 '바오얼나이'라는 현대판 첩이 일부 부유층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특수한 경우도 있었다. 아들이 없어 대를 이을 수 없는 경우 초췌나 초부라는 방법이 동원됐다. 췌는 데릴사위를 의미하는데, 초췌는 아들이 없을 때 딸로 데릴사위를 얻어 대를 이었다.

초부는 아들이 있어도 결혼 후 사망한 경우 과부 며느리를 통해서 데릴사위를 들이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회적으로 용인됐고, 종족의 생존·유지를 위한 방법이었다.

사회보장제도가 없는 사회에서 각 사회구성원이 양로나 자녀 부양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도 이혼은 존재했다.

그러나 주혼권은 가장에게 있었고, 여자는 이혼의 권리가 없었다. 이런 사회에서 이혼이란 '아내를 버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중국의 상속은 '계승'이라는 말로 표현됐다. 서구의 상속 개념과 중국의 계승 개념을 결합한 것이다. 서구의 상속은 전통시기 중국에서는 '분가'라 불렸다. 중국의 가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유재산을 의미했다.

즉 동거하는 자들의 공유재산인데, 자신의 몫을 분가할 때 나눠 받는 것을 의미했다. 아들들에게만 균등하게 분할하는 게 원칙이었다.

1930년 민법이 제정되면서 남녀평등에 의한 상속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형제 균등 분할의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혼인과 상속에 관한 전통적인 관습은 현재에도 사회 곳곳에 남아 그 지속성과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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