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감독 겸임

며칠 전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상위권에 오른 적이 있다.
지난 주말 방송된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한 소프라노 조수미가 카라얀과의 인연을 소개한 여파였다. 방송을 봤거나 방송 리뷰 영상이나 기사를 본 네티즌들이 올해로 타계 20주기를 맞은 '세기의 거장'을 소환했다.
'오페라는 이탈리아, 기악은 독일'이라고 한다. 1882년 창단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기악의 나라=독일'의 등식을 현재까지 증명하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이다.
베를린 필은 한스 폰 뷜로-아르투르 니키쉬-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 이어 1955년 단원 투표를 통해 제4대 상임 지휘자로 카라얀을 선정했다.
1945년 푸르트벵글러가 나치 동조죄로 구금되자 30대 초반의 루마니아 출신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가 자리를 메웠다. 2년 후 푸르트벵글러가 석방된 뒤에도 두 사람은 함께 베를린 필을 지휘했다.
첼리비다케는 평소 "음반은 깡통에 담긴 콜라와 같다"며 레코딩을 거부했다.
1954년 푸르트벵글러가 사망하고 1년 후 진행된 차기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선정 투표에서 단원들은 첼리비다케가 아닌 카라얀을 택했다.
오케스트라(단원)의 주요 수입원인 레코딩을 하지 않았으며, 완벽주의적 성향을 앞세워 리허설 때 막말도 서슴지 않았던 첼리비다케 대신 카라얀을 택한 것이다.
카라얀은 베를린 필 입성 후 이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음악감독 자리도 얻었다. 이 음악제의 메인 오케스트라는 빈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빈 필하모닉)였다.
베를린 필과 빈 필이라는 양대 산맥을 거느리게 된 카라얀은 타계까지 33년 동안 양쪽의 지위를 적절히 활용했다.
그의 눈에 들어야 베를린 필과 협연할 수 있었으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그에게 '황제', '제왕'의 칭호가 따라붙게 된 연유다.
그는 음반뿐만 아니라 영상물을 촬영하는 데에도 관심을 쏟았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레코딩(영상 포함)은 1천여 종에 달하며, 전 세계에서 1억3천만 장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음반은 팔려나가고 있다.
1989년 카라얀이 타계하자 그의 뒤를 이을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여러 인물이 거론됐다. 세계 음악계의 관심 속에, 베를린 필의 제5대 상임 지휘자로 이탈리아 출신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부임했다.
이후 베를린 필의 지휘봉은 사이먼 래틀(영국)을 거쳐 키릴 페트렌코(러시아)로 이어지고 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