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전 해주 상인들 '간절한 바람'
1960년부터 14년간 운영되다 폐쇄
인천~중국간 '화물선 길잡이' 기대
"향후 남북 뱃길 연결 가능성 시사"
등대는 연결의 상징이다. 45년 만에 불을 밝힌 연평도 등대는 분단으로 단절됐던 서해가 연결을 향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연평도 등대는 지금으로부터 꼭 80년 전인 1939년 황해도 해주지역 상인들이 먼저 설치를 요구했던 등대다. 연평도는 그때만 해도 황해도의 섬으로 해주 문화권에 있었다.
1939년 7월 10일 해주지역 경제 단체인 해주번영회는 국제무역항으로 번창하는 해주항 주변에 항로표식인 등대가 없다고 호소하며 연평도 어귀에 등대를 설치해달라는 진정을 총독부에 냈다.
등대역사문화 전문가인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은 그의 책 '등대-제국의 불빛에서 근대의 풍경으로'에서 연평도 등대를 "(황해도에서) 중국에 이르는 뱃길의 중요한 기착지이자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다"고 설명했다.
이미 소청도에 등대(1908년 점등)가 있었기 때문인지 일제는 연평도 등대를 설치하지 않았고, 한국전쟁 이후 1959년이 되어서야 해무청에서 등대 설치가 논의됐다.
조기잡이 어장으로 명성을 떨치던 연평도 해역으로 경기도 일대는 물론이고 충청도, 전라도의 어선들이 몰려들자 안전 운항을 위한 등대가 필요했다.
물고기를 따라 북으로 월경을 하는 어선도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등대였다. 연평도 등대는 1960년 3월 23일 설치돼 연평도를 밝혔다.
1974년 7월 1일 연평도 등대는 정부의 대간첩 작전에 따라 불을 껐다. 등대 불빛이 북한의 침투를 도와준다는 이유였다. 그때부터 45년 동안 연평도 등대는 잊힌 등대가 됐다.
판문점 선언 이후 불어온 평화의 훈풍에 힘입어 연평도 등대가 지난 17일 오후 7시 20분 다시 불빛을 쏘았다. 분단 이전 해주 상인들이 꿈꿨던 바람이 80년 만에 다시 이뤄졌다.
연평도 등대는 인천~중국 항로의 길목에서 화물선의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평도 해역으로는 매달 1천200여척의 화물선이 다닌다.
해수부는 인천항과 남포항이 직결될 경우 연평도 등대의 역할은 한층 더 중요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위성항법장치가 있어 등대에 대한 의존이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졌지만, 연평도 등대의 재점등은 서해의 연결을 말하고 있다.
세계항로표지협회(IALA) 등대유산포럼 부의장을 맡고 있는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등대는 암흑의 바다를 연결의 바다로 만드는 '네트워킹'의 상징"이라며 "육로로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비행기 항로도 검토되는 상황에서 연평도 등대는 뱃길의 연결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