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평도는 원래 북한 황해도 해주군에 속했던 섬이다. 1945년 미·소 군정이 한반도를 38선으로 분할하면서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됐다. 실향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38선과 상관없이 황해도와 연평도 뱃길은 열려 있었고 왕래도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한다. 6·25전쟁 중에는 황해도를 비롯한 북한의 서해안 피난민들이 연평도를 징검다리 삼아 인천 등 남한 서해안으로 퍼져 나갔다. 현재도 주민 70% 이상이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다.
연평도는 제 1·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북한은 1999년과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 중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대한민국 해군함정에 발포했다. 1차 해전은 우리 해군이 완승했지만, 북한의 보복을 작정하고 벌인 2차 해전 때는 윤영하 소령 등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척의 함정을 잃었다. 2010년 북한은 선전포고 없이 연평도에 포격 도발을 감행했다. 시커먼 포연에 휩싸인 연평도의 모습에 전국민이 경악했다.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희생됐고, 주민 1천여명이 피난한 전쟁이었다. 평화로운 꽃게어장 연평도는 세계가 주목하는 화약고가 됐다. 국방부가 우리의 승리로 기록한 세차례의 교전은 남북이 교전 당사자임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17일 저녁, 연평도 등대가 불을 밝혔다. 1960년 설치된 등대다. 조기를 따라 연평어장에 모여든 어선들을 수호하다 1974년 대간첩 작전을 이유로 소등한 지 45년 만이다. 연평도 등대 재가동은 서해5도 어장 확대와 야간 조업시간 확대에 따른 어로활동 보호 차원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 연평도 등대가 유사시 적 공격의 표적이 될 것으로 우려하자, 북쪽으로는 등대 불빛을 차단하고 원격 소등도 가능하게 조치했다고 한다.
연평도 등대는 앞으로 남북관계 예보기능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가 무탈하면 등대가 켜질 것이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꺼질 테니 그렇다. 아무쪼록 연평도 등대가 서해 밤바다에서 분쟁의 먹구름을 몰아내는 평화의 빛으로 밝게 빛나기를, 결코 꺼질 일이 없기를 기원할 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