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601002221900108802

저마다 사람은 임을 가졌으나

임은

구름과 장미되어 오는 것



눈뜨면 물 위에 구름을 담아보곤

밤엔 뜰 장미와

마주앉아 울었노니



참으로 뉘가 보았으랴?

하염없는 날일수록

하늘만 하였지만

임은

구름과 장미되어 오는 것

김춘수(1922~2004)


권성훈(새사진201901~)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너무도 아픈 사랑을 앓아 본 사람은 안다. 그러한 당신을 떠나보낼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 마음속에 찢어지는 상처를 내고 '임'이라는 이름을 새겼다는 것을. 그 임은 때로는 구름이 되어 당신을 찾아와 한바탕 비를 뿌리기도 하고, 때로는 5월의 햇빛 좋은 어느 날 붉은 장미로 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잠시 머물다 가는 구름과 장미는 구름에 물을 담고 있듯이, 장미에 가시를 품고 있듯이 당신을 울리고는 한다. 당신의 임이 하염없이 그리운 날은 한없이 흘러가는 구름도 꽃망울이 활짝 핀 수천, 수만 송이 장미도 임이 되는 것.

임은 그 크기와 부피를 알 수 없는 하늘만큼 커지고 구름처럼 와서 장미처럼 오그라든 입을 벌리고 울다가 웃다가 봉합할 수 없는, 흉터를 매만지고는 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