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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새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을 확정하면서 게임강국인 한국이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다. WHO는 게임 통제 능력이 손상되고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게임을 12개월 이상 지속하면 게임중독이라고 기준을 세웠다. 이 기준에 포함되는 사람은 이제부터 게임중독이라는 질병에 걸린 중환자라는 얘기다.

하지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볼 과학적 근거에 대한 찬·반 진영의 대립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WHO의 결정을 수용한다며 절차를 밟겠다는데, 문화체육관광부는 WHO에 이의를 제기하겠다며 반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자녀들의 게임중독을 우려하는 학부모와 의료계를, 문체부는 게임업계를 대변하니 정부의 입장 조율이 주목거리다.

게임중독은 질병이 아니라는 게임업체와 국내외 과학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게임은 알코올, 마약, 담배와 같은 금단증상도 없고 영구적이지 않다는 논리다. 영화와 같이 수많은 게임이 출시됐다 퇴출되는 문화 기호품이라는 얘기다. 세계를 주름잡는 프로게이머나, 학교에서 1년내내 게임을 하는 한 특성화고교의 E-스포츠학과 학생들마저 게임중독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항변은 과장이지만 업계가 체감하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게임업계에선 '게임중독' 대신 '게임 과몰입'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끼니를 거른 채 학교 수업을 팽개치고, 아이템을 사기위해 부모지갑에 손을 대면서까지 게임에 열중하는 자녀들의 '게임중독 증세'를 매일 체감하는 학부모들에게 게임업체의 반발은 헛소리일 뿐이다.

문제는 정부다. 이미 지난해부터 WHO의 결정이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 보건복지부와 문체부가 딴소리를 내니, 대책 마련에 손 놓고 있었다는 자백이다. 자녀의 '게임중독' 증상을 체감하는 학부모와 '게임 과몰입'을 게임중독으로 침소봉대하면 게임산업이 망한다는 게임업계 사이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가뜩이나 경직된 노동시장과 주력산업의 퇴조로 경제위기설이 회자되는 험악한 시절이다. 노조 결사의 자유를 압박하는 ILO에 이어, 한국의 차세대 유력업종인 게임산업에 고삐를 채우고 나선 WHO에 이르기까지 국제기구마저 딴지를 걸고 나서나 싶은 낭패감은 시절 탓인가?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