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소비·정의 최대주주 '큰소리'
조직사회 합리·민주성 유지하려는
당사자의 고통·노력 모른채 '무시'
작은가치 위한 '희생' 그나마 지탱
나쁜 짓을 했어도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면 눈감아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보수언론, 보수단체 등등. 이들은 돈 중심의 세계관이 굳고 이해관계를 지키려는 성향이 강고하다. 도덕이고 윤리고 배고프면 뭔 소용 있느냐이다. 배고프다? 이 경우 쇠고기 1++등급을 먹다가 1+를 먹으니 1++를 먹고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잘사는 사람에게 돈이 더욱 모인다는 최근 통계를 보면, 1++를 더 많이 못 먹어서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부리는 게 적확한 진단일테다. 경제가 3% 성장하면 자신들에 100만큼 이득이 있는데, 2.4%에 그치면 70만 챙기게 되니 억울하다는 거다. 반대로, 3% 성장이면 몫이 70이지만 2.4%이면 몫이 100이라면, 이라고 그들에게 물으면 그건 현실성이 없는 문제라고 답을 거부할 거다. 현실성이 없을 수 있다. 부익부 빈익빈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현재의 경제 판에 최저임금정책을 투입하는 건 명약관화 불나방 결과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최저임금의 산화를 딛고 승화를 이룰 수 있는 정상적인 묘안이 있을까?
'정상적으로 돈을 벌어보지 못한 사람'이 부자를 험담하고 뜯어먹을 궁리만 한다는, 최근 보수 유력 정치인의 비아냥거림에 고개를 끄덕일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과와 현상만 보면 세상 모양을 적절하게 짚어냈다 하겠다. 부자일수록 보수 성향이 큰 것은 일반적인 사회현상이다. 물론 보수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상당한 편차가 있겠지만, 현재의 질서를 온존하여 자기의 재산과 위치를 확보, 증강하고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관이 적합하다는 것을 실현하려는 성향을 한국 사회 보수의 중심 개념이라 하자. 여기서 핵심은 재산과 권력을 도덕이나 윤리 가치보다 위에 둔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돈 벌고 한자리 꿰찰 경쟁요소에는 몰염치와 사회적 비난을 견디어낼 맷집, 이중적 잣대가 필요하다는 것. 만약 부자와 양심의 밀접성을 측정한다면 부자와 보수 성향과의 정도를 웃돌 듯하다. 양심을 팔아가면서 돈과 자리에 오르면 세상이 그를 우러러보고, 그러면 자신이 결국 옳았다고 흡족해하곤 한다. 지금까지 그들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과 신념을 버리고 호의호식했다가 독재 정권으로 갈아타고 지금은 민족의 분단을 자기 잇속 챙기는 데 써먹는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는 대신 돈을 벌고 입신양명에 몰두하던 그들이 지금의 자유, 소비, 정의의 최대 주주라 큰소리를 친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세상을 사는 방식이라 내세운다. 인권, 노동운동, 통일운동 같은 커다란 것은 물론이고 조직과 사회에서 합리성과 민주성을 지키기 위해서 잃어버리는 돈과 자리를 두고 '비정상적 우둔함'이요 강퍅하다 몰아붙인다. 소소한 신념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당사자가 치러야 하는 고통과 노력의 깊이와 강도를 그들은 모르고 무시한다. 하지만 그런 작은 가치를 지키려는 희생이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이만큼 지탱이 된다.
모처럼 쾌청한 아침, 유력 일간지를 토대로 답안을 적어본다. '정상적인' 돈 벌기가 통할수록 성 상납이 당연시되고, 상속세와 법인세는 낮아지고, 분식회계를 통한 경영 승계는 정석으로 굳어질 테지. 그리하면 클럽에도 경찰서에도 돈이 차고 넘쳐 경제가 술술 풀리고 북한도 핵무기를 버리고 백기 투항을 할 테지. 하여, 한 천 년쯤 자다가 눈뜨고 싶을 만큼 살고 싶은 세상이 오겠지(김형수 시, '미륵을 묻다' 원용). 이것이 그토록 바라던 시대의 모범답안이라 탄복을 하지 않는 자들은 '비정상'인가?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