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국회 외면' 정상화 기미는 안 보여
색깔론 내세워 결집 시도 시대착오적 퇴행
'민심 준엄' 밖에 머무는 시간 짧을수록 좋다
그러나 한국정당은 불신의 대상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갈등을 증폭시킴으로써 시민사회의 균열과 반목을 부추기고 이를 통해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퇴행적 정당정치의 반복은 거슬러 올라가면 냉전논리와 맞닿아 있다. 적대와 혐오의 언어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당지지도 상승과 지지층 결집으로 연결되는 정치의 역설은 이념적 진영논리에 기인한다.
집권세력과 제1야당의 대치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개혁입법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쟁점이 없는 민생관련 입법도 진척이 없다. 내년도 총선에 정당의 모든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과,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치부되는 정치현실에서 정당을 나무랄 수만도 없다.
정치를 비판하고 정당을 나무라는 건 국민의 권리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이 가뜩이나 기능을 상실한 정치를 더욱 왜소화시킴으로써 정치실종과 정치부재를 부추기게 된다면 비판의 실익이 없다.
여야 갈등을 보는 관점의 문제를 재정립할 때다. 여당도 야당도, 보수도 진보도 모두 정파적 이해에 매몰되어 정치공세에 몰두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은 일반론적인 시민사회의 동의에 기반하고 있다. 이른바 양비론이다. 그러나 최근 자유한국당의 행태로 볼 때 피상적이고 본질을 호도할 수 있는 양비론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장외투쟁을 마감하고 '정책투쟁'을 선언했으나 여전히 국회 정상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을 철회하고 사과하면 국회에 복귀하겠다는 발언은 국회복귀와 의정활동을 국민에 대한 의무가 아닌, 시혜로 생각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장외투쟁은 정치적 자원을 독점한 군사정권에 대항하고자 민주화에 대한 압도적 민심에 근거하여 저항했던 민주화 세력에게는 절실한 투쟁이었다. 물론 민주화 이후에 지금의 여당도 장외투쟁을 했으나, 국회를 외면하고 장외로 나가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다.
황 대표는 장외투쟁 기간 동안 여과 없이 적대와 혐오의 언어들을 쏟아냈다. 현 정권을 '좌파독재'와 '좌파사회주의'로 규정하고, '좌파폭정'과 '지옥'으로도 표현했다. 황 대표의 정치적 수사에서 국민들은 '지옥'에서 '절규'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물론 정치공세에 동원되는 언어들은 수위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바 막말은 특정 진영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러나 색깔론과 냉전논리로 반정치주의를 부추겨 지지를 결집시키는 한국당 지도부의 행태는 시대착오적 퇴행이 아닐 수 없다.
한국당에 회군의 명분을 주어야 한다는 말은 맞다. 문재인 대통령이 형식을 불문하고 황 대표와의 일대일 회동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국회 복귀의 명분을 주는 것이 국정을 책임진 세력으로서 합당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를 전제로 한다면 '영수회담'을 한들 정상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패스트 트랙은 국회법에 따른 합법적 절차이기 때문에 아무리 명분을 주어야 한다고 해도 철회와 사과는 불가능하다. 정치적 합리성의 범위 내에서 절충과 양보도 있을 수 있다.
황 대표 체제 이후 지지율 상승의 학습효과에 고무된 한국당 지도부는 집권세력과의 갈등 국면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직하다. 그러나 굳이 외연 확장이라는 프레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민심의 심판은 준엄했다. 집단지성의 힘이다. 투쟁은 정당성을 담보할 때 감동과 울림을 준다. 한국당이 장외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