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001000753600036601
와카타니 노리코(94·여)씨 가족이 부평에서 찍은 사진. 그의 어머니와 두 남동생이 찍은 사진으로, 1940년대 인천소화동국민학교(현 인천부평동초) 관사라고 한다. /와카타니 마사키씨 제공·식민지역사박물관 소장

아버지 근무 학교관사서 거주
부평동 일대 초가집 '허허벌판'
전철 타고 출퇴근 일화도 소개

인천송현초등학교 교사 출신 일본인 와카타니 노리코(94·여)씨 가족은 1929년부터 조선 해방 직후까지 인천 부평에서 거주했다.

아들 와카타니 마사키씨를 통해 1930~1940년대 부평에 대한 노리코씨의 기억을 전해 들었다.

마사키씨는 "어머니는 당시 부평에 아무 것도 없었다고 기억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오는 길에 산 '아이스캔디' 일화를 얘기했다. 마사키씨는 "어머니는 부평에서 인천송현초등학교까지 전철을 타고 다녔는데, 전철역에서 부평 집 사이에는 하나의 아이스캔디 가게가 있었다고 한다"며 "전철역에서 내려 동생들을 위해 아이스캔디를 사서 집에 도착할 때면 이미 다 녹아서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가게가 멀었다"고 말했다.

노리코씨가 1940년대 아버지가 근무하던 인천소화동국민학교(현 인천부평동초) 관사에서 지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이들 가족은 현 부평동 일대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사는 초가집이었다.

1940년대 부평에는 현 부평미군기지 일대에 일본 육군 조병창(군수공장)과 미쓰비시(三菱) 등 군수기업 공장들이 있었다. 당시 조병창 바로 옆에 마을이 형성됐는데, 한국인은 조병창 인근 마을에서 살 수 없었다고 한다.

부평에 살던 일본인 군인 가족들은 패전 정보를 미리 듣고 해방 전 부평을 떠났지만, 노리코씨 가족은 아버지가 전쟁에 징용된 상태여서 조선 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마사키씨는 "어머니는 1945년 8월부터 11월까지 일본인들이 부평에 남기고 간 집으로 옮겨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