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당시 일본으로 강제 동원됐던 여학생들을 찾고 싶다며 여교사가 평생 간직한 자료를 우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자료가 일본에 남아 있게 될 경우 그 중요성이 옅어질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에게도 1940년대 강제 동원의 역사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많은 일본인이 강제 동원 역사에 대해 '다 끝난 얘기 아니냐'고 말한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야스쿠니 합사 취소 소송'의 1심 재판을 참관했다.
한국 강제 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재판은 3초 만에 끝났다. 게다가 일본 정부의 변호인단은 재판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무엇보다 무심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울분을 토했다.
잊혀지고 외면받고 있는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료'와 '기록'이다. 피해자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들이 간직한 자료를 모아야 한다.
일본인 여교사의 가족 역시 일본인들이 공감할 수 있게 사실관계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7년 8월 12일 인천 부평구 부평공원에 1.8m 크기의 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서울과 제주 등 전국 6곳에 징용 노동자상이 있는데, 인천의 징용 노동자상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성인 남성과 '여자아이'가 함께 있다.
일제가 성인 남성뿐 아니라 어린 여성까지 징발했다는 사실을 표현한 노동자상은 전국에서 인천이 유일하다. 강제 동원된 인천송현초 여학생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미 부평공원 징용 노동자상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천시는 여성과 초등학생 강제동원 역사를 기록하는 데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강제동원 기록은 국가 기록물에 해당해 중앙 정부의 몫이라는 게 인천시의 입장이다.
피해자들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실제로 그러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일본인 가족이 찾는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박임순 할머니는 지난해 숨을 거뒀다. 피해자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들이 남긴 기록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인천시가 이제라도 여성 강제동원에 대한 역사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공승배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ks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