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3부작 첫번째 80분짜리 대곡
시민 150만명 사망한 포위전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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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다."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혁명을 어린 시절에 겪었고, 제2차 세계대전도 지켜봤다.

예술가의 창작물에 관여했던 옛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발표하는 작품에 따라 '영웅' 음악가로 대접받으며 훈장을 받지만 이내 '반동'으로 낙인 찍혀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교향곡에 녹여냈다.

그로 인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은 전쟁이나 혁명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다. 이들 작품에는 민중의 피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서양 전쟁사에서 가장 길고 파괴적인 포위전으로 꼽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 속에서 탄생했다.

1941년 6월 히틀러 정권은 소비에트를 침공했다. 이들은 9월 레닌그라드의 마지막 육상 통로(보급로)를 차단했다. 이후 1943년 1월까지 2년 반 동안 이어진 포위전에서 레닌그라드 시민 250만명 중 150만명이 폭격과 굶주림, 질병으로 죽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포화가 빗발치는 절망 속에서 일곱 번째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쇼스타코비치의 작곡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환호했다고 한다. 스탈린 또한 이 작품이 소비에트의 붉은 군대에 힘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6개월 정도의 작곡 기간을 거쳐 1941년 말에 완성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쇼스타코비치의 '전쟁 3부작' 중 첫 번째로, 연주시간이 80여분에 달하는 대곡이다.

1942년 3월, 작품의 초연 이후 소비에트 당국은 쇼스타코비치를 반나치 투쟁의 선봉으로 치켜세웠다. 작품이 워낙 서사적이며 영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에게 쏟아진 찬사를 마냥 반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

1악장의 거친 행진곡으로 표출되는 '침략' 에피소드는 초연 이후 한동안 독일군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작곡가 사후에 출판된 한 전기는 이러한 인식을 불식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전기에서 "7번 교향곡은 나치에게 포위된 레닌그라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스탈린에 의해 이미 파괴되고 히틀러가 그저 마지막에 거들었던 그 레닌그라드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은 전쟁과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위한 '교향악적 레퀴엠'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