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종교 참여 배제·부정선거 협력 등
정권·개신교 밀월 역사 '망언' 입증
불교 무시 논란 종교 갈등 부추겨…
촛불혁명은 4·19혁명과 달라야한다

예컨대 자유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낯 뜨겁게 찬양했던 '만송족(晩松族)' 문인 박종화, 김동리, 조연현 등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한국문인협회의 이사장을 여러 차례 역임하며 문단의 실권자로 군림하였다. 1947년 이승만에게 '우당 이승만전'을 지어 바쳤던 서정주가 문협 이사장 명단에서 빠졌을 리 없다. 한국문인협회는 군사정부가 공포한 포고령 제6호에 따라 1961년 12월 30일 결성된 문학인 단체이며, 김동리·조연현·서정주가 박정희나 전두환 등의 군사정권과 유착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에게 5·16군사쿠데타가 어떤 의미로 다가섰는가는 조연현의 다음 문장을 통해 짐작할 수 있겠다.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장군의 지휘로 한강을 넘어온 일군의 군대는 무능과 혼란 속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위험한 우리의 조국과 현실 앞에 하나의 질서와 방향을 던져주는 신호가 되었다. 혁명의 성공으로 조국의 새로운 건설은 촉진하게 되었고, 혼란은 질서를, 분열은 통일을 가져왔다. (중략) 혁명의 성공에 의한 이러한 새로운 현실적 조건은 다른 모든 분야에 있어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문단에도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게 했다."(「내가 살아온 한국문단」)
미완에 머무른 4·19혁명의 한계는 문단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일부 개신교 세력의 망언·망동을 보며 갖게 된 생각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피력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승만, 박정희를 잇는 지도자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가 망언인 까닭은 이를테면 강성호의 '한국기독교 흑역사'(짓다)를 일독하면 금세 드러난다. 명예장로 이승만은 개신교 이외의 종교에 배타적이었으며, 이를 국가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타 종교의 참여를 차단한 채 군종제도와 형목제도를 도입하고, 국가의례를 기독교식으로 진행하고,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제정하고, 정치권력의 핵심부에 기독교 인사들을 포진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일종의 기독교 국가체제(Christendom)를 만들어갔다."
개신교는 이승만의 정책에 적극 호응하였으며, 부정선거에도 협력하였다. 자유당 지도위원에는 김활란, 모윤숙, 배은희 목사, 백낙준, 유호준 목사, 윤치영, 임영신, 이규갑 목사, 이윤영 목사 등 개신교를 대표하던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였으며, 한국기독교연합회는 이승만 지지를 공개 표명하고 조직적인 지원에 나섰다. 부정선거를 총지휘한 내무부 장관 최인규는 교회 집사였고, 가톨릭 신자 장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이 나라를 바티칸에 팔아먹을 것이라고 마타도어를 만들어낸 이는 전성천 목사였다. 이는 이승만 정권이 시행하였던 '천주교 믿는 공무원들을 좌천시키거나 해고하는 차별 정책'과 호응 관계에 놓인다. 정권의 경향신문 폐간에 동의하고 나선 것도 개신교 세력이었다.
이승만 정권과 개신교의 밀월 관계 복원 위에서 파악한다면 전광훈 목사의 망언·망동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황교안 대표가 장관을 제안했다고 했던가. 자유당 시절 교육부 장관, 내무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던 최인규 집사의 선례가 있다. 문재인 정권이 "주체사상을 종교적 신념의 경지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종북·공산화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지 않은가. 이승만 정권의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전성천 목사의 마타도어는 기꺼이 허용되었고, 정권의 지원까지 받았다. 황교안 대표로부터 촉발된 불교 무시 논란은 종교 갈등을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개신교 국가체제로 나아가기 위하여 타 종교와의 성전(聖戰)은 부득이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다 보면, 미완에 머무르고 만 4·19혁명의 한계와 절박하게 맞닥뜨리게 된다. 그럴수록 촛불혁명이 4·19혁명과 달라야만 한다는 생각은 더욱 절실해진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