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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그래서 감동이 크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를 각본 있는 드라마인 영화로 옮겨 놓아도 감동은 전혀 반감하지 않는다. 결과를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유가 있다. 승부의 결과보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선수의 좌절과 영광을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열악한 조건에서도 굴하지 않는 국가대표 스키선수를 다룬 '국가 대표'에 국민이 열광한 것도 그런 이유다.

각본 없는 드라마 한 편이 어제 막을 내렸다. 준우승에 멈췄지만 그 과정은 치밀한 각본대로 움직이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 각본은 정정용의 손에서 쓰였다. 누군가 훗날, '2019 U-20 월드컵 대회'를 영화로 만든다면 주인공은 이강인보다 무명 감독 정정용이어야 한다. 이번 경기가 있기 전까지 이름은커녕 그 존재감조차 알지 못했던 68년생 감독 정정용은 1983년 박종환 감독이 이끌던 U-20 대표의 4강 신화보다 더 큰 역사를 썼다.

감독 정정용은 대구 출생이다. 신암초등, 청구 중·고, 경일대를 졸업했다. 수비수 출신에 국가대표 경력도 없다. 요즘 말로 '흙 수저' 출신이다. 거기에 큰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일찍 마감했다. 최고경력은 2부리그였던 대구 FC 수석코치였다. 기회는 눈앞에서 스타 출신 지도자에게 번번이 빼앗겼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가 주로 U-13·U-14·U-16·U-18·U-19 등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한 점이다. 그는 한마디로 '선수 조련사'였다. 그의 평소 지론은 '20세 이하 어린 선수들에게 우승보다 중요한 건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막이 내리면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선수를, 무대 위의 배우를 비추게 마련이다. '골든골' 수상으로 이강인은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격려, 신뢰, 소통을 앞세워 개성이 강한 젊은 선수들을 '원팀'으로 만든 감독 정정용의 리더십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정 감독은 경기마다 상대에 맞춰 변화하는 용병술과 전술적 작전 변화,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선수 기용과 교체 등 승부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치고 명감독이 없다'는 축구계의 격언을 감독 정정용은 또다시 입증했다. 마침내 한국축구의 새 역사가 써졌다. 이제야 비로소 한국축구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