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선 가격 통제 기구에 의한
'공정한 경쟁' 이뤄지도록 하고
경제적 불평등 해소 위해선
최저임금 급격하게 올리기 보다
세금 걷어 약자 지원 '훨씬 효과적'

경제전망대-허동훈10
허동훈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은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보수는 시장에 대한 신뢰가 깊고, 진보는 시장의 한계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각 진영 내에서도 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하므로 일반화하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론을 둘러싼 논란도 시장을 보는 관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수천 년 이상 인류의 경제성장은 거의 없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권력, 신분, 전쟁이 경제적 성과의 분배를 결정했다. 지배계급이나 피지배계급이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할 동기가 별로 없었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인류의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 250년의 경제적 성취는 그전 1만년 동안의 성과를 압도적으로 뛰어넘는다. 19세기 초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5세 이전에 사망하는 유아 비율이 50%에 가까웠다. 현재 선진국에서 그 비율은 1%도 안 된다. 얼핏 보면 기술발전이 산업혁명을 이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술을 생산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시장과 자본주의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시장에서 기여와 성과가 대체로 비례하는 체제가 등장했기 때문에 경제적 성과를 키우려는 노력이 커졌다. 시장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경제성장으로 견인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네가 번 돈은 네 거다'라는 환경이 경제성장의 동력이었다.

인센티브 체계 못지않게 가격기능도 중요하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가격기구는 굳이 누가 지시하거나 통제하지 않아도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물론 시장의 효율성에도 한계가 있다. 현실의 시장은 불완전하므로 공공재, 외부성, 독과점 등 시장의 실패가 있다. 시장의 실패는 효율성과 관련된 것이지만 효율성과 무관하게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경제적 불평등이다. 소득재분배가 중요한 이유를 보자. 우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경제적 약자를 돕는 것에 규범적 가치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적 성과에는 운이 따른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경제적 성공은 운 또는 사회적 여건에 많이 좌우된다. 누군가 농구라는 종목을 만들지 않았고 PC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마이클 조던과 빌 게이츠의 성공도 없었다. 운 좋은 사람이 불운한 사람과 성과 일부를 나누는 것 역시 규범적 가치가 있다. 심한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통합을 해쳐서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해치는 것 역시 소득재분배가 중요한 이유다. 가난한 나라는 경제성장이 중요하지만, 선진국에서는 경제적 평등이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데 더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오른쪽으로 많이 기운 보수주의자는 소득재분배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인 세금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다. 현실의 시장이 항상 효율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 영향이 미미하다고 본다. 반면 왼쪽으로 많이 기운 진보주의자는 시장의 가격기구에 개입해서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공공재 공급 부족, 외부성, 독과점 등 시장의 불완전한 요인을 교정하려고 개입하는 정책은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목적으로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특정 행위의 금지를 포함해서) 가격을 결정하는 정책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목표 달성도 어렵다. 예를 들어 한때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오갔던 백화점과 대형마트 셔틀버스 금지 규제를 보자. 쇼핑할 때 짐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 길만 더 막힌다. 버스준공영제 상황에서 시내버스가 백화점 셔틀버스로 피해 볼일도 없는데도 정책은 그대로다. 경제정책에는 선의가 좋은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장에서는 가격기구에 의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경제적 불평등 해소, 즉 포용은 시장 밖에서 조세·재정 정책을 통해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세금은 시장에서 거두는 것이므로 시장과 무관하지 않지만, 직접 가격을 통제하는 것보다 부작용이 적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기보다 세금을 걷어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는 것이 더 나은 정책이다. 한편 시장만 신봉하고 포용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은 기대할 게 없다.

/허동훈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