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삽날에 사라져가는 건물·집
생활사 가치 상실의 다급함 반영
머물러있던 기억 소환·실체 대면
당시 골목골목의 찰나 47편 선봬
집 주변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니 자연스레 걷는다는 행위가 단조로운 의식에 작은 보폭을 주어 서툰 동작을 하게끔 하더니 이내 쓸모있는 일상의 도구로 여겨졌다.
이전에 '양촌'과 '돌말'이 합쳐져 생긴 마을 '간석'은 현재 주택재개발이라는 큰 삽질에 모양이 사나워지고 있다.
이런 때에 나는 단순히 마을의 부재를 걱정하기보다 맞닥뜨리는 기억을 더 소중히 하고자 산책을 그만둘 수 없었는데, 이윽고 나의 길(way)이 생겼다.
…(중략)… 나도 모르게 쥐고 있는 연필을 놀리는 그런 가벼움으로, 걸어 마주하는 대상과 관계를 지어 보았던 게 어느새 작업이 되었다.
-유광식 개인전 '일상의 연필' 작가 노트 중에서(2010년)
2010년에 열린 사진작가 유광식(41)의 첫 번째 개인전 '일상의 연필'은 작가가 당시 거주했던 인천 미추홀구 간석동 지역의 '일상'을 담았다. 당시 작가는 지도 한 장을 펴들고 골목 곳곳을 누빈 결과물들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후 작가는 중·동구와 부평구 십정동 등에서 거주했고, 거주지역의 '산책'을 통한 결실들로 각각의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그 결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광식 작가의 '얼음집이 녹는다'展이 26일 인천도시역사관 2층 소암홀에서 막을 올린다. 7월 9일까지 진행될 이번 전시는 인천도시역사관의 연중 기획전 '2019 도시를 보는 10명의 작가'의 네 번째 전시로 기획됐다.
전시회 준비에 한창인 유 작가를 인천도시역사관 소암홀에서 만났다.
"세를 살다 보니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거처를 자주 옮겨야 했어요. 2011년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 있던 시기를 비롯해 제 거처 주변을 사진에 담았었죠. 그곳의 사진들 중 전시회장 규모에 맞춰 선별된 작품들이 관람객과 만날 예정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선 2010년대 인천의 구도심을 담은 사진 작품 47점을 만날 수 있다.
작품들은 작가가 거주했던 지역 별로 전시장 4개 면에 배치된다.
전시장 입구를 기준으로 왼편은 동구, 입구 맞은편은 미추홀구, 우측은 중구, 입구 쪽 면엔 부평구 십정동 지역의 집들이 담긴 사진 작품이 자리한다.
"장소에는 지난 시간 안에서 쉽게 버려질 수 없는 이야기와 모양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중에서도 옛이야기의 작은 창고이자 발신처인 '집'에 시선을 두었어요. 시간이 지나 낡은 집은 사라지고, 사라진 집을 되살릴 수 없지만, 그 기억은 무형으로 남아 어떤 실마리를 통해 되살려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사진에는 생활사적으로 가치를 갖는 건물(집)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상실감과 다급함이 담겼다.
또한, 당시 생활상을 상기시키려는 바람도 담겼다.
"사진은 머물러있던 기억을 소환하며, 실체를 대면하도록 유인하는 자연스러운 터널이 되어줍니다. 양지와 그늘을 오가며 얼음처럼 자리를 지켰던 인천의 장소들, 그야말로 얼음집이죠. 서로를 지탱하던 몸이 무력하게 녹아들던 그 찰나에 저는 사진을 찍었을 겁니다. 사진에 담긴 무심한 풍경에 얼음집의 눈물이 스며있을지 모를 일이고요. 불과 몇 년 전 사진들이지만, 현재 없어진 집들이 많습니다. 시대의 가치가 녹아있는 우리 주변의 모습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