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무색 "쉬면 녹슬 것" 의지
테너서 바리톤으로 바꿔 '활약'

젊은 시절 반짝 빛나는 스타는 많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히 사랑을 받는 스타는 많지 않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전성기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후배들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몸이 악기인 성악가의 경우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기량의 퇴조는 빠르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세계 오페라 무대를 누비는 스페인 출신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78)는 독보적이다.
2008년 영국의 권위 있는 음악 저널인 'BBC뮤직매거진'의 평론가들은 투표를 통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너'로 도밍고를 선정했다.
스리 테너의 일원이었으며 오랜 라이벌이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뿐만 아니라 엔리코 카루소와 베니아미노 질리, 마리오 델 모나코 등 전설적인 테너들의 평판도 넘어선 것이다.
그즈음 도밍고는 테너로서 고음이 흔들리는 부침을 겪고 있었다. "그만 품위 있게 은퇴해"라고 평론가와 동료들은 이야기했다.
"쉬면, 녹이 슬 것(When I rest, I rust)"이라며 의지를 꺾지 않은 도밍고는 2009년부터 바리톤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전성기의 테너 시절에 비하면 성량이 줄었지만, 바리톤으로서 깊이 있는 음색을 선보이고 있다.
도밍고는 지난 4월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의 주역으로 오스트리아의 빈 슈타츠오퍼 무대에 올랐다. 그의 4천 번째 오페라 공연이었다. 4천 회는 레코딩을 뺀 순수 무대 출연 횟수이다.
18세이던 1959년 멕시코시티에서 공식 데뷔한 이래, 60년 만이다. 도밍고는 그동안 테너 132개와 바리톤 18개를 합한 150개의 오페라 배역을 소화했다.
파바로티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한정된 30여 개의 배역을 맡았으며, 20세기를 풍미한 테너 카루소와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생전에 맡은 배역은 각각 60개와 50개였다.
도밍고는 지난 5월 미국 LA 오페라와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 무대에 올랐다. 이달 초엔 드레스덴 잼퍼오퍼 무대에 섰다.
많은 성악가들이 성대 보호를 위해 오페라 출연 횟수를 조절하고 나이가 든 뒤엔 힘이 덜 드는 콘서트 위주로 활동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도밍고에게 오페라는 늘 활동의 중심이었다. 영화배우와도 같은 외모와 연기력에 드라마틱한 가창력을 겸비한 그는 반세기 넘게 오페라 팬들을 매료시켰다.
이탈리아와 독일 오페라 모두에 정통한 거의 유일한 테너였던 도밍고에 따라붙는 '오페라의 제왕'. 매우 타당한 수식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