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수전환·초동대처 미흡 불신 초래
예산투입 무조건 수도관 교체보다
명확한 원인 규명후 해결책 세워야
시민들 믿고 기다려주는 마음 필요
환경부와 함께 인천상수도사업본부에서 이번 인천시 서구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온 이유를 발표했다. 붉은 수돗물은 녹물이 맞으며, 풍납취수장에 전기공사를 하면서 오랜 시간 단수를 할 수 없어 팔당취수장 물을 임시 공급하는 과정에서 평소 사용하지 않던 두 곳의 관을 열어 원래 물길이 아닌 방향으로 흐르면서 수압이 높아져 관에 있던 녹이 떨어져 나왔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 한국환경공단 등 수돗물 안전지원단이 원인 규명과 수돗물 정상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인천 수돗물사건을 기점으로 서울, 평택, 안산 등 전국 곳곳에서 민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진짜 문제는 이와 맞물려 20년 지난 수도관은 모두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이다. 물론 교체가 필요한 곳은 교체해야겠지만, 민원이 접수된 지역 중에는 수도관이 노후되어서 녹물이 나온 것이 아니라 배수지 경계 밸브를 잘못 건드려 그런 현상이 나타난 곳이 있고, 또 어떤 지역은 수도관이 폴리에틸렌 재질로 녹물이 나올 수 없는 구조인 곳도 있었다.
수도관 교체를 위한 예산을 편성한다는 지자체의 발표를 들으면서 대한민국 전역에 20년이 지난 수도관을 모두 교체하는 상상을 해보면 전 국토가 공사현장이 되어 쑥대밭이 되고 세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액수가 길바닥에 뿌려지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또 20년이 지나면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말인데, 수도관의 수명이 '20년'이라는 것은 어떤 과학적 근거와 타당도를 지니고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 이런 사건 앞에서 우리는 조금 천천히 하나하나 짚어가는 게 필요하다.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번 인천 수돗물사태와 맞물려 물에 관한 그림책이 생각난다. '물싸움 (전미화 그림책/사계절)'은 하늘에서 내리는 물에 맞춰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부들의 마음을 그렸다. 가뭄이 극심할 때 모두가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대려고 싸움이 일어난다. 이때 가장 연장자가 '팻물'이라는 말을 한다. 그때부터 물과 사람의 질서가 잡혀간다. '쌀 한 톨의 무게를 하늘도 땅도 농부도 안다.'로 끝나는 이 그림책을 보면서 물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우리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물은 우리 삶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고, 우리는 물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을 느끼고 있을까? 이번 사태를 통해 새삼 수돗물이 우리 집 수도꼭지에서 나오기까지 물의 긴 여정들을 생각하게 된다,
'붉은 수돗물 사태'를 돌이켜보면 가장 문제가 되었던 사항은 급수전환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고, 초동대처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시민들의 국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그런데 그렇다고 당장에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터진 땜 막듯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수도관을 교체하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명확하게 현 상황을 진단하고 문제점을 찾아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시민들 또한 불편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겠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믿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겠다. 이번 인천 수돗물사태가 빠른 시일에 해결되어 마음 편하게 좋은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하겠다. 산 좋고 물 좋았던 그 시절의 우리나라가 그립다.
/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