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하는 스카르파와 볼로디아
둘 사이 '인정욕망' 둘러싼 갈등
연극은 끝났지만 관객들은 궁금
왜 중심인물은 스카르파가 아닐까
후안 마요르가의 '비평가'(6월 27일~7월 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연극이 끝난 이후가 궁금한 작품 목록에 추가할 만하다. '비평가'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한 인물은 극작가인 스카르파, 다른 한 인물은 비평가인 볼로디아. 연극은 비평가인 볼로디아가 자신의 집을 급히 떠나고, 극작가인 스카르파가 신문사에 공연평을 전한 후 끝난다. 스카르파는 작품을 계속 쓸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난 이 장면을 수없이 봤어요. 난 그걸 만들 줄 모릅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볼로디아는 이후의 삶이 궁금하다.
후안 마요르가가 2012년에 발표한 '비평가'는 2017년 국내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매년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에서 '비평가' 외에 '다윈의 거북이', '맨 끝줄 소년'이 이미 공연될 정도로 그의 희곡은 인기가 많다.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 중의 하나는 관객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한 방식에 있다. 그는 "관객의 상상은 무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의 머리 안에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다윈의 거북이'에서 해리엇은 교수에게 "전 다윈의 거북이예요"라고 소개한다.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펼쳐지는 이 장면은 관객에게 연극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초대장을 내미는 순간이다. 지금부터 극적 사건을 함께 하겠냐고 말을 거는 것이다. 이 말 걸기에 관객이 호응해야만 연극은 시작할 수 있다. 그 불가능한 이야기에 함께 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만 연극은 시작할 수 있다.
'비평가'에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치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10년이나 이어지는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을 압축하는 과정이다. 어떤 갈등이라야 10년이나 지속할 수 있을까. 대체 그 갈등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극작가인 스카르파는 10년 전 볼로디아의 혹평을 접한 후 그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작품을 쓴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그 좌절이 창작의 원천이 되는 시간을 견디면서 쓰고 또 쓴다. 마치 볼로디아가 유일한 관객인 것처럼.
드디어 10년이 지난 오늘 공연에서 스카르파는 15분이나 이어지는 관객의 기립 박수를 받는다. 그럼에도 스카르파는 볼로디아의 평이 궁금하다. 볼로디아가 신문사에 보낼 연극평을 미처 쓰기도 전에 찾아온다. 둘 사이의 인정 욕망을 둘러싼 연극이 비로소 시작한다. 인정 욕망을 둘러싼 갈등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내내 스카르파는 난타당한다. 그러나 극중극 형식으로 펼쳐지는 권투 이야기에서처럼, 스카르파는 쓰러지기 바로 직전에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만약 그녀가 문을 열어주길 바란다면, 당신은 적당한 단어들을 찾아야 할 겁니다." 볼로디아가 마지막 대사를 남기고 집을 나선다. "난 이 장면을 수없이 봤어요. 난 그걸 만들 줄 모릅니다." 연극은 그렇게 끝난다.
연극은 끝났지만 관객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제목이 비평가일까. 중심인물은 스카르파가 아니란 말인가.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비평이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직 가능했던 세계에 터전을 두고 있다면, 볼로디아는 이후에도 비평을 계속할 수 있을까. 스카르파의 말에서 볼로디아가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의 흐름에서 벗어나, 감히 고독이나 조롱거리와 마주하세요. 그리고 저항하기 위한 눈을 준비하세요."
이러한 궁금함은 이 연극을 풍요롭게 한다. 후안 마요르가는 "예술은 관객을 놀라게 하고 위험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해야" 하며,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을 강화시켜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