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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무차별 폭행당하는 동영상이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주여성이 폭행을 당하는 내내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던 두 살 아기가 자꾸 눈에 밟힌다. 주먹과 발길질을 피해 얼굴을 감싸고 웅크린 엄마를 조막손으로 보듬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폭행이 멈춘 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에게 엄마 품은 과연 평화로웠을까?

'평화'의 반대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전쟁'을 꼽을 듯싶다. 그러나 국내 평화학 박사 1호인 정주진 박사의 설명을 접하다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그는 저서 '평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에서 평화의 반대는 '폭력'이라고 정의한다. 이어 폭력의 유형을,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처럼 폭력이 사람에게 직접 가해져 바로 피해가 발생하는 '직접적인 폭력'과 사회의 구조를 통해 가해지는 '간접적인 폭력', 문화를 통해 이뤄지는 '문화적 폭력'으로 구분한다. 전쟁은 직접적 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폭력의 한 종류다. 가장 위험한 폭력이기에 평화의 반대말 하면 전쟁부터 떠올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은 단지 '직접적 폭력'의 희생자일까? 평화학에서 말하는 간접적 폭력은 사회 구조가 약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말한다. 재산이 없거나 급료가 낮은 사람이 신용도 때문에 은행 대신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것도 일종의 간접적 폭력으로 설명한다. 유색인종, 여자, 어린이, 장애인, 외국인 등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문화적 폭력이다.

평화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주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 신분에 물리적 폭행까지 당한 피해여성은 직접적 폭력은 물론이고 간접적인 폭력, 문화적 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몸을 추스를 경황조차 없는 엄마의 품으로 뛰어든 아기야말로 이런 복합적인 폭력문화가 낳은 최대의 희생자다. 폭력은 워낙 파괴적이기에 아기는 엄마 품이 평화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작 두 살배기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으리라.

정 박사는 평화학에 대해 '평화를 이루는 평화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으로 요약한다. 큰 전쟁을 치렀음에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 학과가 없다. 국가 차원의 안보적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았고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갑질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지금이야말로 평화를 '배워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