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요소·폭력등 골고루 담겨

"나의 시대는 반드시 올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유대계 작곡가 말러(1860~1911)가 생전에 남긴 이 말은 완벽하게 실현됐다. 20세기 후반 이후, 클래식을 얘기할 때 말러는 피해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전 세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의 연주 성과에 의해 평가받는다. 말러가 교향악의 절대 기준으로 떠오른 것이다.
1889년 초연된 '교향곡 1번'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기존 교향곡 체계에서 벗어나려는 대담한 시도에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생전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그의 작품은 사후 50년 가까이 지나서 평가받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1960년대, 우리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후기 낭만주의'로 분류되는 말러의 음악에는 동화적인 요소, 아름다움과 모성애에 대한 동경, 전쟁과 폭력에 관한 묘사 등이 골고루 담겼다.
세기말의 염세적이며 퇴폐적 풍조와 어우러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탐미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당대 최고 지휘자 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대편성 오케스트라에 의한 풍부한 음향과 함께 매우 정제된 실내악적 음향으로 작품의 미묘한 분위기를 극대화 시킨다. 말러의 음악에는 다양한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으며, 그만큼 열혈팬들도 많다.
말러를 테마로 1999년 국내 인터넷 포털에 문을 연 한 카페는 아직도 활발하다. 올해가 20주년이다.
SNS의 발달로 오래된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가 쇠퇴했지만, 이 카페는 11일 현재 2천200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으며, 하루 평균 100명 정도가 꾸준히 카페를 찾고 있다.
카페는 정기적으로 서울에서 음악 감상회를 여는 등 말러 음악에 대한 매력과 묘미를 공유하고 있다.
월간 '객석'의 편집장을 지낸 박정준씨는 말러의 음악을 '고요의 바다'(달의 표면에 있는 달의 바다)로 지칭했다.
그는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1악장에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는 듯한 악상의 움직임이 보인다고 했다. 말러는 교향곡을 통해 '하나의 우주'를 구현하려고 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