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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직장문화는 수평적이고 개인주의적이다. 냉정한 고용계약이 바탕에 있다. 미국 회사의 고용 계약서에는 '당신은 임의로 고용된 근로자이며 이는 회사가 당신을 언제든지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있다. 취업 리얼리티쇼를 진행했던 트럼프는 "You're Fired(넌 해고야)"라고 소리쳤지만, 실제로는 회사가 직원을 자르는데 큰 소리칠 이유가 없다. 출입증을 정지하고 컴퓨터 로그인을 막거나, 조용히 불러 통보하면 그걸로 끝이다. 사정이 이러니 직원들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태도로 회사와 상사를 대한다.

반면에 유교적 전통이 유장한 우리나라 직장문화는 이와 사뭇 달랐다. 고용계약서는 존재하지만 한번 직장은 평생직장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회사도 직원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범죄적 해사행위가 아니면 고용을 유지했다. 집안마다 가풍이 다르듯 회사마다 고유한 사풍으로 직원들을 통제하는 폐쇄적 구조는 직급에 따른 수직적 상명하복 직장문화를 만들어냈다. 상사의 지시가 부당해도, 폭언은 물론 폭행을 당해도 조직을 위해 참고 넘기는 걸 미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평생직장 개념이 깨지는 중이고 고용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노동조합의 권력은 정부와 정당만큼 강력하고, 무엇보다 신세대 직장인들의 근로의식은 유교문화와 거리가 멀다. 직원들에게 막말하고 부당한 지시를 남발하는 상사들은 직원들의 요시찰 대상이 된다.

이런 시대적 추세에도 여전히 직장 갑질을 일삼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오늘부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즉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다.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 우월적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 ▲업무상의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금지된다. 가해자 대신 사용자가 처벌받는다. 직장내 괴롭힘이 없도록 직원들 교육을 똑바로 시키라는 뜻이다.

폭력적인 직장문화를 바꾸고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일은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직원을 존중하는 자발적 환경변화일 것이다. 귀하게 얻은 인재를 직장내 괴롭힘으로 잃을 바보 같은 기업은 없다. 천지에 청년 실업자가 널려있고 이들을 값싸게 고용하는 현실이 직장내 폭력의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