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국가채무는 35.9%로 낮지만
비금융공기업 부채비율 OECD 1위
단기적 불경기엔 재정투입이 유리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땐 효과미미
경기둔화 원인진단후 실행 나서야

경제전망대-허동훈10
허동훈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는 과감한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 재정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랏빚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2018년 기준 OECD 평균 국가채무 비율이 113%가 넘는데 우리는 국가채무 비율이 35.9%에 불과해 문제없다는 논리를 편다. 재정을 크게 확대하면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에 문제는 없을까? 그만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까? 단정적으로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나랏빚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D1(국가채무)은 중앙·지방정부 부채, D2(일반정부 채무)는 D1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를 합친 것이다. D2에 비금융공기업의 부채를 더하면 공공부문 부채 즉 D3가 된다. OECD는 D2를 주요 기준으로 삼는데 우리 정부가 밝힌 비율 35.9%는 D1이다. 일반적으로 D1~D3의 격차가 크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비금융공기업 부채 비율이 통계를 발표하는 OECD 회원국 중 1위로 아주 높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D3는 60.4%여서 OECD 평균과 차이가 줄어든다. D3에도 포함되지 않는 금융공기업 부채도 우리나라만 정부가 지급보증을 선다.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우리는 작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유럽 선진국이 고령사회로 진입할 때 국가부채 비율은 우리보다 낮았다. 그리고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충당부채가 D3에는 빠져 있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지급보장을 하지 않으므로 국가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책임져야 할 개연성이 높은데 국민연금을 부채에서 제외하면 잠재적인 국가부채가 적어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국민연금은 그때그때 걷어서 주는 부과식이어서 정부 부채와 무관하다. 하지만 우리는 적게 받고 많이 돌려주는 적립식이어서 나중에 고갈되면 세금이 들어갈 수 있다.

요약하면 국가 간 비교에 범주가 좁은 D1이나 D2가 많이 쓰이지만, 넓은 테두리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외국과 다른 불안 요인이 많아서 장기적 재정 건전성에 대해 낙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재정 확대 정책을 자제해야 하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장기적으로 낙관할 수 없지만, 현재 여건으로 보면 재정 여력이 충분하므로 일시적 재정 확대 정책에 따른 부담이 크지 않다. 정부가 단기적인 불경기에 재정을 투입해서 경제를 살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필요하다. 국제금융위기 이후 유럽은 상대적으로 재정 긴축 정책을, 미국은 재정 확대 정책을 폈다. 국제금융위기 직후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긴축 정책을 편 유럽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적인 정치인이나 경제학자들은 확장적 재정정책이 재정 건전성 악화, 시장의 신뢰 붕괴,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거라고 경고했다. 대략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다보면 케인지언 경제학자들 예측이 맞았다. 유럽은 경기회복 속도가 매우 느렸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빨라서 최근에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퍼부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국가부채 비율만 40% 선에서 200% 넘게 늘었다. 최근에서야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다소 경기가 살아난 상태다. 이렇듯 재정 확대 정책은 성공과 실패 사례가 있다. 그 차이를 가르는 원인은 뭘까? 원론적인 지적이지만 불경기가 유효수요 부족 때문이면 재정 확대 효과가 있다. 투자와 소비심리가 위축돼서 잠재성장률보다 실제 성장률이 낮을 때 정부가 돈을 풀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잠재성장률이 낮아졌고 실제 성장률과 격차가 작다면 재정 확대가 정부 빚만 늘릴 뿐 별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재정 확대 정책을 펴기 전에 성장률 둔화 원인을 먼저 진단할 필요가 있다. 단언할 수 없지만, 현재의 경기둔화에는 구조적인 요인과 심리적 요인이 섞여 있는 듯하다. 잠재성장률은 보통 낮아지더라도 급속히 나빠지지는 않는데 실제 경기둔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재정 확대가 필요하지만, 투자와 소비를 억제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재정을 얼마나 쓰느냐 이상으로 중요한 대목이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허동훈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