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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0년 11월 28일 동력자원부가 유공주식 50%의 인수기업으로 (주)선경을 선정했다고 발표한 경인일보 기사. /경인일보DB

'포춘 159위' 국내 정유회사
걸프사 철수로 민영화 방침
원유 안정확보 최우선 조건
삼성·남방개발 제치고 낙점
항간에선 '노태우 개입' 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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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1980년대에도 계속됐는데 최대 사건은 (주)선경이 1980년 12월에 국내 최대의 정유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에너지)의 합작선인 걸프사의 지분 50%와 경영권을 함께 인수한 것이다.

유공은 정부가 1962년에 설립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독점 정유회사로 1970년 6월에 미국의 걸프사가 지분 50%를 인수해 경영권을 장악했다.

>> 괄목할만한 성장


유공은 1979년도 매출액이 1조1천200만원으로 단일 기업으로는 국내 최대일 뿐 아니라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1979년도 세계 500대 기업(미국기업 제외) 중 159위에 랭크된 세계적 규모의 정유업체였다.

당시 국내에는 호남정유, 쌍용정유, 현대석유, 경인에너지(한화에너지) 등이 있었으나 국영인 대한석유는 마켓 셰어 1위를 유지하는 리더기업이었다.

유공의 민영화 방침이 공개된 것은 제5공화국 출범 직전인 1980년 10월로 유공의 경영주체이던 미국의 걸프(Gulf)사가 그해 8월 19일자로 철수한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로 경영성과가 신통치 못한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1973년 10월 6일 중동전쟁 직후인 11월 6일에 걸프 측은 한국정부에 "(11월) 이후 한국에 원유공급량을 30% 감축하겠다"고 통보했다.

칼텍스(Caltex)는 10%, 유니온 오일(Union Oil)은 20%를 감량하겠다고 통보하는 등 전체적으로 국내의 석유공급량을 한꺼번에 22%나 삭감하겠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1차 석유파동 당시 OPEC은 한국을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나라로 간주해 한국에 불이익을 준 것이다.

당시 한국은 중동에서 석유를 100% 수입해왔는데 이 또한 100% 미국계 정유사를 통해 들어오던 참이었다.(오원철,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 강국을 만들었나', 2010년, 223-4면)

>> 사우디와 장기원유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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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초에 정부는 종합무역상사들에 원유도입을 허용하고 이에 소요되는 자금을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의 석유수급 조절명령을 발동했다. 종래의 정부 베이스의 원유도입 방식에서 한계를 절감했던 것이다.

효성, 현대양행, 동아건설, 대한항공, 현대건설, 코오롱, 쌍용, 삼성 등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주)선경은 사우디와 장기원유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1980년 7월 17일부터 국내 정유업계에 원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상과 같은 배경으로 1980년 11월 28일에 동력자원부는 걸프가 철수하면서 내놓은 유공주식 50%(2천375만1천771주)의 인수기업으로 (주)선경을 선정했다고 발표해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삼성과 선경, 남방개발 등 3개 후보 기업들을 놓고 평가한 결과 선경에 낙점한 것이다.

정부는 유공의 경영권을 국내 기업에 넘기기로 했는데 최우선의 조건을 소요 원유의 장기 안정적 확보능력에 뒀다.

선경의 최종현 회장은 1973년 선경석유(주)를 설립하고 온산에 100만평의 정유공장 부지를 확보했으나 1차 오일쇼크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의 각별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항간에서는 당시 노태우 보안사령관이 개입해서 성사시켰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