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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에도 조선 조정은 당쟁을 멈추지 않았다. 선조는 도성인 한양을 버리고 파천을 결정했다. 비참한 정경이다. 그런데 개성 쯤 까지 도망가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자 마자 파천이 정쟁거리가 됐다. 당시 조정을 장악한 동인들은 남인과 북인으로 가지를 친 상태. 남인들이 파천에 앞장섰다며 북인 이산해를 탄핵했다. 선조는 이산해와 함께 남인 영수인 유성룡을 파직한 뒤, 서인 정철을 불러들인다. 왜란을 예고한 황윤길이 속한 서인의 영수를 복권함으로써, 왜란은 없다고 단언한 김성일이 속한 동인들을 문책한 것이다.

하지만 송강 정철은 병사하자 마자 모든 관직을 빼앗기고, 전쟁을 지휘하던 유성룡 등 동인들이 다시 중용된다. 그런 유성룡도 명나라 사신직을 거부하다가 북인들에 의해 영의정에서 쫓겨난다. 왜적 대신 내부를 향한 문신들의 무의미한 설전(舌戰)이 한창일 때, 야전에선 이순신이 백의종군에 시달리고 원균은 조선함대를 잃었다. 이순신 배 12척의 배경은 참담하다. 전쟁후 동인계열 북인이 정권을 장악하지만 이들도 곧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졌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일식집 사케 논란이 시끄럽다. 이 대표의 사케 반주에 대한 보수 야당들의 비난은 지나치다. 음악과 한식으로 무장한 한류의 세계적 확산에서 보듯이 글로벌 식문화에 국경이 사라진지 오래다. 일식도 우리 식문화의 일부다. 여당도 책임이 있다. 여당과 청와대는 한일 경제전쟁 과정에서 적극적인 반일 의지를 강조해왔다. 조국 전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언급하며 '이적과 애국', '친일파'의 기준을 제시했다. 야당의 사케 공세에 조 전 수석은 '전국의 일식집이 다 망하기 바라느냐'고 일갈했지만, 일식집에서 사케, 아니 국산 청주 한잔 하기 힘든 분위기를 누가 만들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왜군에 쫓겨 나라가 절단난 마당에 왕의 피란 책임을 따지는 시비나, 여당 대표의 일식집 오찬 반주가 사케인지 국산 청주인지 가리는 시비가 모두 졸렬하고 처참하다. 정쟁이 전쟁을 압도하는 비현실적인 16세기의 구태가 21세기에 재연되니 처연하다. 일본 경제침략에 맞설 이 시대의 이순신은 어디서 백의종군 중일지 궁금하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