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분쟁, 日에 휘둘려선 안된다
다양한 분야 대상자들 손해 보며
대한민국 공익 자양분 역할 수행
희생하는 '사회경제적 약자' 위해
정치권, 제도적 장치 머리 맞대야


경제전망대 조승헌2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원만한 결혼생활보다 이혼과 미혼은 덜 행복하지만, 가장 불행한 건 이혼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루에 몇 번씩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고 속이 뒤집어져도, 대안이 없으니 어찌할 수 없는 게 세상사 어디 부부관계뿐이랴. 자기 맘대로 되는 걸 찾는 것이 더 힘든 게 현실이 아닐까 싶다. 말 한마디, 글 한 조각도 사회적 눈치를 봐야 하고 전화 한 통도 정해진 방식을 따라야 한다. 도시에서 신호등 한 번 안 걸리고 걷거나 차를 몰 수 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끽해야 신호등 서너 개 통과.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 한계가 아닐까. 적응력과 인내로 따진다면 일각일각이 깨달음이고 성자가 되는 셈이다. 아니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의 본질은 순종모드로 프로그램되어있지만, 영혼이 있는 유기체적 아이템으로 보인다.

영혼이라는 말의 사회경제적 의미는 사익에 매몰되지 않는 공익지향성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의 이익이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공공재를 생산하는 '비합리적' 행위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 일본 강점기에 독립운동은 민족과 국가의 보위라는 공공재를 위하여 개인의 이익을 아낌없이 투여한 공익활동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도 그런 맥락이다. 공공과 개인의 자원과 노동을 사유재로 갈취하고 탕진한 것이 과거 독재정권이었다면, 일한 만큼 가져가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배려로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간 경제분쟁을 평가하고 대응하는 양상을 조감해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사정과 내밀한 구도를 관찰할 수 있다. 한국의 관점만 보자. 이 분쟁이 한시적으로 내년 총선에 여당에 유리하다는 건 상식이다. 설사 자유한국당이 여당이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바깥과 싸움이 벌어지면 내부는 기존체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내부가 분열하면? 그 나라는 망했다. 경제가 더 나빠진다 해도 당분간 정치 판세를 뒤집는 건 힘들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이겨서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어 반도체를 다시 만들고 수출을 하고 그래서 경제가 조금 나아지는 것을 대다수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전히 또다시 전승국 일본에서 건너온 아사히 맥주를 마시고 유니클로, 린나이, 데상트, ABC마트, 미니스톱을 들락거리겠지만…. 애국, 민족 같은 커다람을 위한 헌신이 개인과 집안의 실생활에 어떤 어려움을 주었는지는 독립운동 후손이나 공익제보자의 어려움을 통하여 학습효과를 충분히 알고 있는 우리다. 그 틈을 파고들어 배부른 게 최고라며 노예근성을 합리화하는 정치 세력이 이 땅에 거대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분쟁이 어느 정도 역사의 한자리를 차지할지 지금으로선 불확실하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명심하고 다짐하고 꼭 챙겨야 할 것이 있다. 이번 일을 '1965년 체제'를 벗어나 실질적으로 일본에 휘둘리지 않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지금 여기에 공감하고 행동으로 동참하는 다양한 부문과 사람들이 있다. 매출이 떨어지는 편의점, 여행사, 택배사와 배달원 등은 현장에서 여러모로 남모르는 어려움을 자발적으로 이겨내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손해 보는 개인적 이익은 대한민국 공익의 밑바탕이자 자양분이 되고 있다. 커다란 손해를 보는 업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관심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적 자존심이 결부된 판국에서는 적지만 모든 걸 바치고 있는 현장의 자그마한 희생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장기전을 승리로 이끄는 관건이 될 수 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우선 할 일은 '정책보고서'도 '팀킬'도 아니다. 자연재해대책법 같은 제도적 장치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어차피 한국과 일본은 이 지구상에서 같이 살 수밖에 없지만, 싸움은 이번으로 끝이 아닐성싶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 때 나라와 공익을 위해 협조하고 희생한 사회경제적 약자를 이후 충분히 챙기지 못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경제적 양극화, 정치적 대결주의라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속가능한 애국을 고민해볼 때다.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