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인수
최종현 선대회장이 내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니석유상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SK 제공

해운회사 설립 유조선 취역
정유시설 울산항 원유 수송
국내 최대 석유에너지 기업
22개社 11개로 '대폭 축소'
정부 체면 세운 '가지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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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은 알 사우디은행으로부터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1억달러의 차관을 도입해서 불하대금 671억7천800만원을 상환했다.

선경은 1982년 상호를 (주)유공으로 변경하고 1985년 대한석유의 나머지 지분 50%마저 인수해서 선경그룹의 주력기업으로 전환했다.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이어서 특히 주목됐다.

선경은 유공 인수를 계기로 국내 최대의 석유제품 판매업체인 (주)흥국상사의 경영권도 확보했다. 흥국상사는 1965년 2월 10일에 자본금 1천만원으로 설립된 개인 사업체였다.

>> 흥국상사 경영권 확보


그러나 1969년 6월에 걸프가 586만달러의 현금차관을 공여하면서 전 주식의 25%를 인수하고 경영권을 확보했다가 1972년 12월에 유공이 흥국상사의 전 주식을 인수해서 유공의 자회사화했던 것이다. 흥국상사는 1980년말 당시 매출액 2천104억원에 매출이익률 6.53%의 초우량기업이었다.

1982년 1월에는 자본금 10억원의 유공해운(주)를 설립하고 그해 6월과 7월에 25만 톤급의 대형 유조선 '아나벨라'호와 '야스텔라'호를 파나마로부터 용선해서 취역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라두라누라항에서 원유를 선적해서 정유시설이 있는 울산항으로 수송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같은 해 7월에는 아세아상선으로부터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인 '코리아스타'호도 용선해서 원유수송에 투입했다.

해외유전개발사업도 이때부터 개시했다. 신규로 개발하는 예멘의 마리브유전에서 생산된 원유의 10%를 (주)유공이 가지기로 사전에 예멘정부와 컨소시엄 계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마리브유전은 1985년 11월부터 개발정 시추와 생산시설 및 수출송유관 건설 등에 착수해서 1987년 12월부터 본격생산에 돌입한 단기간 내에 성공한 케이스였다.

1988년 1월 20일 유공해운 소속의 'Y위너'호가 마리브유전에서 생산된 개발원유 35만 배럴을 싣고 울산항에 입항했다.

유공 인수와 함께 관련 수직다각화작업을 동시에 병행해서 선경그룹은 종래의 섬유재벌에서 국내 최대의 석유에너지 기업집단으로 전환했다.

더구나 한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 추세여서 에너지소비의 급신장은 불문가지여서 선경그룹의 비약은 이미 예고됐다.

>> 계열사 정리작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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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서 계열기업 정리작업도 추진했다.

1980년 9월27일 정부는 대기업집단의 주력기업 전문화 정책을 단행, 재벌들의 문어발경영 해소를 촉구했다. 선경은 주력사업을 섬유와 석유사업에 한정하고 나머지 사업들은 정리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해외섬유(주)의 월곡공장은 (주)선경에서 인수하고 동천공장은 선경매그네틱(주)로 넘겼다. 선경복장(주)는 (주)선경에서 인수했으며 경영실적이 좋지 못한 선경반도체(주)와 선경머린(주)는 폐업했다.

선경기계(주) 및 선경목재(주)와 중소기업 업종인 (주)워커힐여행사, 워커힐교통(주), 선경식품(주), 선경유화(주)는 매각처분하고 자본참여 형식으로 계열화했던 영남방직(주)는 지분을 매각했다.

선경은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총 11개 기업을 정리, 계열기업 수가 종래 22개에서 11개로 대폭 축소함으로써 전두환 정부의 체면을 세워줬다. 형식 면에선 매우 파격적이었으나 내용 면에서는 영양가 없는 사업만 골라 가지치기했던 것이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