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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징후가 있다. 가령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것이 일반적인데 2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0년 만기 금리 아래로 떨어지면 이는 불황의 신호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립스틱의 판매량이 급증하며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경기의 국면 및 전환점을 판단할 때 유용하지만 매월 약 2천200가구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조사 시간이 길고, 소비자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 정확도가 떨어지는 게 큰 단점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2017년 카드사와 공동으로 구축한 '신용카드 빅데이터 기반 경기동향 예측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일반인의 소비 패턴을 카드 사용으로 분석해 불황과 호황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월 2억 건의 신용카드 결제 빅데이터에 따르면 20대의 서적, 편의점, 제과점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경기 불황의 사전징후로 분석됐다. 또 30대의 대중교통 이용이 늘어나거나, 40대의 약국, 건강제품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는 것도 경기 불황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포터·봉고지수'도 불황의 징후를 파악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1t 트럭의 대명사인 이들 차량이 많이 팔리면 불황이라는 논리다. 1997년 IMF 직격탄을 맞고 200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포터와 봉고에는 '불황의 차'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경기 악화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늘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도 늘고 이들에게 활용도가 높은 1t 트럭의 수요도 함께 늘어나서다. 떡볶이·순대·튀김·호떡을 파는 이동사업자에게 기동력이나 가격 면에서 1t 트럭만큼 유용한 게 없다. 그래서 1t 트럭은 서민 경제를 대변하는 생계형 차종의 부동의 대표주자로 '경기 민감 차'로도 불린다.

올 7월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1t 트럭 포터가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 증가한 6만3천451대가 팔렸다. 봉고의 판매량도 3만7천39대로 기아차 국내 판매 2위를 차지했다. 영락없는 불황의 징조다.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는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포터와 봉고는 더할 나위 없는 '효자' 상품이지만, 판매가 늘수록 불황의 그늘은 더욱더 짙어지고 있다. '포터·봉고의 역설'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