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친일-반일' 구분하는 전체주의 발상
일본 우익 언론인들 '망언' 무시하면 그만
與, 사무라이들 주장 '공론화' 과하고 위험
日과 경제전쟁 '총력전' 승리 지혜 모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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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논설위원
일본이 자국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강제로 중단시켰다.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는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현대미술 작품을 한데 모은 기획전이다. 일 정부는 기획전을 통째로 막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가짜 민주주의 국가의 실체를 드러냈다. 정부의 역사인식과 어긋나면 민주주의의 요체인 표현의 자유마저 유보할 수 있다니 그렇다. 자민당 정부는 민주주의로 선출된 정권의 한시성을 거부하고 군국주의 회귀를 통해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반민주 집단임을 선포한 것이다. 일본의 민주적 대중이 항의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제국 시절을 몽유(夢遊)하는 자민당과 우익의 기세가 워낙 압도적이다.

아베는 제국의 광기에 오염된 군국주의자들의 후예다. 미친자와 싸울 땐 같이 미쳐서 싸우면 안된다. 특히 미친자가 힘이 셀 땐 더 그렇다.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형세판단으로 미친자를 진정시킨 뒤 격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일 정부가 제국의 감성으로 우리를 압박한다고, 우리 마저 식민의 울분을 소환해 대처할 필요가 없다. 일 정부의 퇴행적 역사관에 같이 춤추면 미친자의 도발에 이성을 상실하고 같이 뻘밭을 뒹구는 형국이다. 그래봐야 미친자와 같이 뒹군 탓으로 미친자 취급 받을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땅에 친일 정권을 세우겠다는 (일 정부의) 정치 야욕에서 정치 주권을 지키겠다는 것이 국민의 각오"라고 말했다. 장외에서 사견을 전제로 나돌던 일본의 '한국내 친일정권 수립론'이 집권여당의 공식회의에서 최고위원의 발언으로 현실 정치에 진입했다.

'친일정권 수립론'은 전체주의적 논리구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일본이 세우고 싶은 친일 정권이 있다면 현재의 문재인 정권은 반일 정권이라는 얘기다. 이는 반일 정권인 문재인 정권을 향한 비판·비난·조롱 등 모든 표현은 친일 행위이고, 대한민국에 일본의 괴뢰정부를 세우려는 매국'행위가 되는 논리로 귀결된다. 친일정권 수립론에 담긴 '친일 대 반일' 프레임은 이 땅의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구분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그 기준이 현 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라면 민주주의 상식에 어긋난다.

일본이 한국에 친일정권 수립을 획책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일본 우익 조무래기 언론인들의 망언이다. 무시하면 그만인 헛소리다. 무엇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국민과 정당이 친일 정부를 세울 이유가 없다. 반일 프레임은 여당 뿐 아니라 야당에게도 달콤한 꿀단지다. 이명박은 독도 정상에 올라 독도영유권을 상징적으로 선포했다. 외교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지지도는 올랐다. 박근혜는 집권 초기 아베의 구애에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일본과의 적당한 긴장은 어느 정권에게나 효과적인 당의정이다.

집권여당이 일본의 몇몇 언론 사무라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친일정권 수립론'을 공론화하는 것은 과하고 위험하다. 이미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 학계를 친일 프레임으로 압박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여당 대표가 일식집에서 정종을 반주로 밥만 먹어도 시비에 걸리는 상황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총력전이다.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수단을 모두 모아야 한다. 비판과 제안이 자유로워야 한다. 비판과 제안을 친일로 몰아버리면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화는 의미를 상실한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반일 종족주의'를 보고 "이런 구역질 나는 책을 낼 자유가 있다면, 시민은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를 자유가 있다"고 했다. 조 전 수석의 주장을 존중한다. 마찬가지로 정부를 비판할 자유를 친일과 매국이라는 용납할 수 없는 단어로 제한해서도 안된다. 일본은 평화의 소녀상 철거로 민주주의를 압살했다. 대한민국은 일본이 되면 안된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