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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 장면. 판문각을 찍으려는 사진기자를 손으로 막는 남측 군인 이병헌과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북측 사병 송강호의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스틸 컷. 이 명 장면은 실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아니라 남양주 종합촬영소의 8천여 평에 9억원을 들여 완성한 오픈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영화가 공개된 후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이 멋진 영화의 촬영 현장을 보기 위해 연간 40만명이 찾는 유명 관광명소가 됐다.

1998년 남양주 조안면 삼봉리 132만3천113㎡ 부지에 들어선 촬영소는 영화촬영용 야외 세트와 6개 실내 촬영스튜디오, 녹음실, 각종 제작장비 등을 갖추고 국내 영화 제작의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서편제',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취화선', '미인도' 등 한국 영화의 대표작들이 남양주촬영소의 장비와 기술로 탄생했다. 한국영화의 위상은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촬영소가 문을 닫는다. "그래? 몰랐는데"하며 놀랄 것도 없다. 2004년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으로 부산 이전이 결정됐고, 이제 8월 말이면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남양주 촬영소 시대는 막을 내린다. 문제는 이전 예정지 부산 종합촬영소의 건립이 지지부진하다는 것.

더 답답한 건 '서울영화장식센터' 등 의상과 소품을 담당하는 기업 2곳이 마땅히 옮길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훼손되기 쉬운 영화 소품의 특성상 당장 이전도 어렵다. 이들 의상과 소품만 무려 40여 만점. '왕의 남자'의 연산군이 앉았던 용상, '여고괴담'의 책걸상들, '살인의 추억'에 등장한 형사들의 철 책상과 캐비닛 같은 소품들 대부분도 포함된다.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꼭 그런 케이스다. 당시 표를 의식한 정치적 결정으로, 사용료가 저렴하고 접근성 등이 뛰어나며 여러 편의 작품을 동시에 제작할 수 있는 대형 스튜디오가 완비된 세계적 촬영소가 이렇게 허무하게 문을 닫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로인해 9월 이후 한국 영화 촬영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상황이 심각하자 부랴부랴 수도권에 촬영소 부지를 찾아다니는 이 웃지 못할 얘기는 실제상황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