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협상에선 자기중심적 사고 탈피 중요
스스로 수정·중단하는 전략 인정하지 않아
'정보왜곡' 합리적 의사결정하는데 '치명적'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최악 결과'


정상환 국제대 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정상환 국제대 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사실 연인들의 이별은 아주 큰 문제보다는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오랜 연인일수록 더욱 그렇다. 상대를 너무 잘 알고 사랑하기에 '이것쯤은 양해와 이해를 해줄 것'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 벤치에 연인이 앉아있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 띤 대화가 무척이나 다정하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여성이 토라져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갔다. 똑똑똑 구두 소리를 세며 걸어가는 여성은 '저 남자가 나를 불러 세우겠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다. 벤치에 혼자 남은 남성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저 여자가 나를 사랑하기에 다시 돌아와 내 옆자리에 앉겠지'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여성은 되돌아가기에 너무 먼 거리를 걸어왔고, 남성은 뛰어가 잡아야 하나, 소리쳐 불러야 하나 쭈뼛거리다 그녀의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이 연인들의 헤어짐은 '자신의 생각'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다. 돌아가 앉거나 불러세웠으면 그들의 사랑은 계속되었을 텐데….

협상도 마찬가지다. 특히 문화적 배경이 다른 국제협상에서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서로 상호작용하여, 갈등과 의견의 차이를 줄이고 해소해야 한다. 즉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협상의 실패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수(下手)의 협상가가 흔히 범하는 오류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첫째 자기중심적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속어로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 이다. 이러한 근자감을 갖는 협상가는 자신이 상대보다 정의롭고, 지적이며, 도덕적이고 능력이 있다는 우월감을 갖는다. 이러한 우월감은 상대를 정확히 꿰뚫어 보지 못한다. 상대를 얕잡아 보는 순간 상대는 더 큰 괴물로 달려든다.

둘째, 일반적인 협상가들은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는데 집착한다. 명성과 평판의 훼손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주도하는 협상을 스스로 수정하거나 중단하는 것도 협상전략의 일환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일관성 없는 지도자로 평가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러한 고집(?)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하는 이유가 된다.

셋째,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는 받아들이고, 불리한 정보는 무시한다. 긍정적 정보는 과포하여 받아들이지만 부정적 결과가 발견되어도 스스로 판단을 왜곡시켜 협상을 진행한다. 이러한 정보 왜곡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데 치명적이다.

넷째,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수 중의 하수가 갖는 오류다. 협상의 여러 변수는 자신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데도 자신이 영향을 미쳐 자신의 의도대로 관철할 수 있다는 순진무지(純眞無知)한 대처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데도 말이다.

대부분의 협상자는 협상성과를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 낙관하니 협상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협상은 '제로섬 게임'이나 '파이 나눠먹기'가 아니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윈-윈 게임'과 '포지티브-섬 게임'을 해야 한다. 더 큰 파이를 만들어 돌아가는 몫을 키워야 한다. 서로를 만족시켜야 한다.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니며, 낙관과 비관의 문제가 아니다. 상처뿐인 영광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파이가 쪼그라들면 이긴 게 무슨 소용인가?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히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협상의 시작이다.

/정상환 국제대 교수·전 청와대 행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