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방송사가 주최하는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유승민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코리아 패싱이라고 아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문 후보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말의 뜻보다 문법에 맞지 않는 콩글리시라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지만 이 말은 원래 1998년 아시아를 찾은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일본은 들르지 않자 일본언론이 '재팬 패싱'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 일본 언론이 만든 영어 조어에서 차용한 것이다.
'코리아 패싱'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후 미국과 직접 협상을 벌여 중유와 경수로를 받기로 한 1994년 '제네바 합의'가 그것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이 협상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이때부터 미국과 직접 협상에 재미를 붙인 북한은 핵 협상에 있어 '한국의 참여를 봉쇄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외교 전략으로 고수해 왔다.
2012년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계획으로 장거리 미사일 문제가 불거지자 이에 놀란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규모 식량 지원을 토대로 북한과 직접 협상을 벌여 '2·29 합의'를 이끌어냈다. 한국은 빠진 채 세 차례 고위급 회담을 했다. 그리고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활동 중지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에 따른 24만t의 식량 지원을 합의했다. 하지만 유엔안보리가 1874호 대북제재 결의안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장 성명을 발표하자 북한은 즉각 2·29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북한의 진정성에 실망한 미국은 '남한을 통하지 않고는 북한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통남봉북(通南封北)'을 선언했다. 남한 없이 북한과 대화를 하다 보니 북핵은 물론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미 대통령이 된 후 상황은 바뀌었다. 소원한 한·미관계를 틈타 북한이 잇단 미사일 발사 등 대남공세를 강화하면서 뒤로는 미국에 친서를 보내자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맞장구를 쳤다. 이러다 우리만 쏙 빠진 '미북봉남(美北封南)'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운전자론'과 '4·27 판문점 선언'의 정신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트럼프 정부의 '코리아 패싱'에 '한국 호구론'까지, 이래저래 잠 못 드는 여름밤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