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산에 정기가 한곳에 모여/그림같이 아름다운 정든 내 고향/이끼 푸른 옛 성에 역사도 깊어 /어딜 가나 그윽한 고적의 향기'.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배운 게 '수원의 노래'였다. 의무 사항이 아닌데도 담임 이기준 선생님은 "수원에 살면 '수원의 노래' 정도는 외워 부를 줄 알아야 한다"며 직접 풍금을 치며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끼 푸른 옛 성'이란 가사에서 풍기는 쓸쓸한 느낌이 왠지 좋았다. 성을 오를 때마다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옆 친구가 또 그 친구의 친구가 같이 따라 불렀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만 이 노래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50년 전 일이다.
달랑 문만 남은 북문, 늘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동문, 온전한 성이라고 하기엔 볼품없이 무너진 성곽 도시에 불과했던 수원이 변하기 시작한 건 수원성이 복원되면서부터다. 처음 공사가 진행될 때 만해도 "어휴! 도대체 언제 복원이 끝나?"하고 한숨을 쉬었지만, 아홉 개였던가, 주춧돌만 덩그러니 서 있던 팔달산 정상 서장대와 장안문에 지붕이 얹혀지고 성곽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면서 "수원이 뭔가 변하는구나"라며 비로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수원성 복원정화사업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진행됐다.
이랬던 수원이 시로 승격한 지 어제로 70주년이 됐다. 1949년 8월 15일 수원 읍에서 시로 승격된 수원시는 5만명의 소도시에서 지금은 125만명으로 늘었고 명실상부한 경기도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IT로 세계를 호령하는 삼성전자 본사가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수원은 전통의 수원화성과 세계 초일류 첨단 기업인 삼성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도시로의 모습을 갖췄다. 18세기 말 개혁의 군주 정조대왕이 수원 천도까지 생각하며 꾸었던 거대한 수원의 꿈은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늘 손에 쥐고 있으면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겐 성의 존재가 그랬다. 수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살던 고향에 대해 그런 추억쯤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신도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도시의 경계마저 무너져 '내 고향'이란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더욱이 광역도시의 출현으로 우리 아이들은 그런 추억조차 가질 수 없게 됐다. 그나마 이렇게 수원시 승격 70년을 맞아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인지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