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만 입구에는 호르무즈(Hormuz)라는 섬이 있다. 면적은 42㎢, 인구 3천여 명. 이란 땅이다. 구글 지도로 보면 황량한 모래섬이지만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데 위치해 해상 교역의 요충지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10세기 호르무즈 왕국은 이 섬을 근거지 삼아 페르시아만 무역을 통제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1433년 해상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중동 서남아 동아프리카를 거쳐 이곳에 들른 명나라 항해 왕 정화(鄭和)는 호르무즈 왕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병사했다.
열강들이 호르무즈 섬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인도와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호르무즈는 페르시아 해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으로 폭이 54㎞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주요 산유국의 원유 수출 통로이기도 하다. 매일 약 2천250만 배럴의 석유가 이곳을 통과한다. 이는 세계 일일 석유 생산량의 24%에 해당한다. 세계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일시적으로 유조선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막히면서 유가가 폭등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호르무즈가 최근 다시 뜨거워졌다. 지난해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치적이던 이란 핵 합의를 전격적으로 파기하고 대 이란 제재를 시행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호르무즈 인근 해역에서 유조선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는가 하면 최근엔 미국과 이란이 서로 상대편의 무인기를 격추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 정보기관 공작설 등을 주장하면서 페르시아 만은 순식간에 일촉즉발 긴장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 구성을 위해 우방국들에 파병 요청을 하자 우리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우리와 일본을 꼭 짚어 참여를 요청해 걱정이 더 크다. 현재 참가를 결정한 나라는 영국과 이스라엘. 이미 독일은 불참을 선언했다. 한미동맹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서울 강남에 '테헤란로'가 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어온 이란을 생각하면 쉽게 답하기도 어렵다. 국내에선 사드배치 때처럼 파병을 두고 의견이 찬반으로 갈라졌다. 언제나 두 개의 답안지를 두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 마치 호르무즈 해협이 처한 상황을 보는 것 같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