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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선진화된 경영 시스템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경영 효율성과 재무 건전성을 높였다. /SK 제공

재벌구조해체 등 '공격 명분'
최태원, 끝내 회장직 사퇴
2008년 분식회계 혐의 구속
MB, 78일만에 '특별 사면'
자산 97조420억 재계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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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은 또 다른 시련으로 고전했는데 2003년에 뉴질랜드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그룹의 모회사인 SK(주)(현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인수를 시도한 때문이었다.

 

최태원 회장이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되면서 SK(주)의 주가가 급락하자 소버린의 자회사인 크레스트는 자산 30조원의 SK그룹 장악을 시도했다. 

 

1천768억원을 동원해 SK(주)의 지분 14.99%를 확보, 2대 주주로 급부상한 것이다. 워낙에 소버린이 지분을 빠르게 장악했던 나머지 '5% 지분 공시' 룰에도 불구하고 SK그룹은 미처 손쓸 겨를이 없었다.

2003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소버린 측은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최 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당시 최 회장 등 총수일가의 직접 지분은 1.39%에 불과했지만 결국 표 대결에서 최 회장 측이 승리했다.

>> 지분 재빠르게 '장악'


그 과정에서 지분확보 경쟁이 야기되면서 SK의 주가는 이전의 5천원 가량에서 2004년에는 3만~5만원 대로 급상승한다. 

 

그리고 2004년 10월 소버린이 임시주주총회를 요구하고 2차 공세를 강화하자 SK의 주가는 무려 6만원대로 치솟았다.

한편 지분확보 경쟁에서 소버린은 자신들의 SK그룹 공격에 대한 명분이 필요했다. 

 

'재벌구조해체' 내지 '투명경영' 등을 내세운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소액주주와 SK 노조의 지분을 소버린에게 이양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소버린은 2005년 7월 SK(주)의 지분을 전량 처분, 8천억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얻으며 '먹튀'하고 말았다. 수익률이 2년 만에 600%였는데 이로써 소버린사태는 마무리됐다.

2004년 최태원은 SK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2008년에는 1조5천억원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됐으나 이명박 대통령은 수감 78일 만에 그를 특별 사면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가짜 장부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표면화되면서 노무현 정부가 자진 신고할 경우 처벌을 면제해주는 식으로 분위기를 띄운 터여서 최태원 회장만 단독으로 처벌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 탓이다.

금융감독위원회와 법무부는 2005년 3월부터 2007년 3월말까지 2년 동안 한시적으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분식회계를 바로 잡을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해주기로 했던바 자수한 기업 수가 총 200여 업체로 국내 상장기업(코스닥 포함) 1천600여사의 8분의 1에 해당했다. 

 

더구나 2008년에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시작부터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표방하고 나선 점도 한몫 했다. SK의 분식회계는 국내 재벌들의 고질적인 파행경영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어서 의미가 크다. 

 

정부는 기업 투명성 제고차원에서 분식회계, 허위공시, 주가조작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증권집단소송제를 2005년 1월부터 실시했다.

>> 계열사 86개 '그룹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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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SK그룹의 약진은 계속돼 2011년 4월에는 계열회사 수 86개에 자산총액이 97조420억원으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순위 5위에 랭크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전력 등 공기업을 제외하면 삼성, 현대차그룹에 이어 3위다. 

 

1980년대를 경계로 삼성, 현대, LG, 대우 등 빅(big) 4와 나머지 재벌들 간에 양극화가 점차 심해짐에도 불구하고 SK가 톱(Top) 3에 진입한 것이 매우 이채롭다.

분식회계로 하루아침에 파산한 미국의 엔론(Enron Corporation)과는 너무 대비된다.

 

텍사스주 휴스턴에 본사를 둔 엔론은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2월 2일에 별안간 공중분해 됐다. 

 

2만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2000년 매출 1천110억달러를 달성한 세계 주요 전기, 천연가스, 통신 및 제지 기업의 하나로 '포춘(Fortune)'은 엔론을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엔론의 자산과 이익 수치는 대부분 가짜였다. 어떤 경우에는 엄청나게 부풀려졌으며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인 것도 있었고 부채와 손실은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다. 엔론의 실제 수익원은 이 회사의 모태인 노던 내추럴 가스뿐이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엔론의 회장이었던 케네스 레이 회장과 최고경영자 제프리 스킬링은 연방법원에서 사기와 내부자 거래 등으로 각각 징역 24년4개월과 24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엔론의 외부 감사를 맡았던 미국의 5대 회계법인의 하나인 아서 앤더슨 또한 이 사건으로 영업정지를 당해 결국 파산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