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권 독점·수사권 장악한 검찰
저급한 과장 쏟는 황색 저널리즘
입시 함몰된 중등교육 개선 전무
밖으론 개혁 흉내 안으론 특권욕
온갖 위선사회 혁신 시대적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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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자신의 눈에 갇힌 말이 칼이 되어 허공을 떠돌고 있다. 수없이 많은 허망함이 사람을 찌르고 되돌리기 힘든 상처를 입힌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시나브로 죽어간다.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수사권을 장악한 검찰이 저질렀던 사회적 폭력은 법의 허울을 입고 떠돌았다. 절차적 정의를 장악한 법이 칼이 되어 현란하게 춤출 때 시민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 현란함과 거짓된 법적 정의를 개혁하라고 외쳤다. 그래서 검찰개혁과 사법농단 처벌을 말했지만, 그 요구가 또 다른 칼춤이 되어 우리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하이에나 같은 황색 저널리즘이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감춘 채 저급한 과장과 거짓된 혀를 마음껏 휘두르고 있다. 사회적 자산을 기반으로 학벌의 특권을 독점한 이들이 공정이란 외피로 더 많은 특권을 향해 양양거리고 있다. 탐욕과 상대적 박탈감이 공정의 옷을 입은 채 혐오와 독설로 난무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개혁이며,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밖으로 일본과 미국을 통해 주어지는 압박이 새로운 동북아 체제를 추동한다. 어쩌면 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국은 동북아에서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담대하고 깊이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다시금 굴종의 위치로 떨어질 것이다. 반대로 이 시간을 자율과 자존의 담대함으로 대처한다면 이 위기는 우리를 평화와 자주의 길로 이끌어갈 것이다.

지금의 '조국' 논쟁은 저급한 언론을 개혁할 절호의 기회다. 자신의 정파적 이익을 감춘 채 한 줌의 특권과 절차적 공정만을 되뇌는 무뇌아 언론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제대로 된 언론이란 표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봉하에서, 드루킹 의혹에서 칼춤을 추던 언론은 다시금 과거의 행태를 반복한다. 정파적 이익과 황색 저널리즘의 진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언론 개혁 없이 어떻게 시민 사회가 가능할까. 그들의 속성이 남김없이 드러난 지금, 이들의 행태를 정확히 보고 기억하면서 언론을 정론으로 이끌어갈 기회가 왔다. 적어도 이들을 저급한 황색 저널리즘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있다.

외고, 특목고는 물론 입시교육에 함몰된 중등교육의 문제점은 수도 없이 지적했으며, 그 개선을 이 정부는 공약으로까지 내세우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 문제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전무 했다. 현재의 대학 체제와 폐허가 된 대학을 바꾸지 않고서는 어떠한 입시제도도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 'SKY 캐슬'이 지배하는 학벌 사회는 이 면허증이 불변의 자산이며, 상층부를 향해가는 특급승차권임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어떻게 개인에게 이 체제를 벗어난 도덕을 요구할 수 있는가. 수백만 명의 청소년을 빈사상태로 몰아가는 입시교육을 개선하려는 어떤 노력을 했던가. 학벌의 특권을 누리는 이들은 누구도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은 교육에서 자신의 부족적 지위를 확보한다.

체제와 구조가 모순적임에도 그 안에서 시민정신과 도덕을 요구하는 것은 위선이다. 제도의 모순을 개인의 도덕성으로 대체하려는 사회는 게으른 사회다. 그 사회는 온갖 모순이 극대화되어 결국 분열되고 해체될 것이다. 합계 출산율 0.98명, 청년 자살률과 노인 자살률 일위 따위의 지표, 극대화된 경제 불평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정책을 장악하고 있다. '헬조선'이란 자조를 이해할 어떠한 감수성도 지니지 못한 이들이 특권을 독점한다. 밖으로는 제도와 체제를 개혁한다는 흉내를 내지만 안으로는 한 줌의 특권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위선 사회다.

지금 우리는 안팎으로 한 줌의 정파적 이익에 함몰된 부족주의를 넘어서는 시민정신, 평화와 인간다움의 공동체를 향한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실용주의를 넘어 의미론적 사회를 향한 문화적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 그를 위한 개혁이 이 시대의 당위적 요구가 아닌가. 촛불은 그 외침을 담고 있었다. 우리의 열망과 시대적 요청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문화와 시민사회를 향해 나아갈 중요한 전환점이 다가왔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