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몸에도 미국 초유의 4연속 대통령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스벨트가 좌절과 실의에 빠진 국민을 달래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난국을 이겨낸 데는 그의 뛰어난 화술 덕이 컸다. 그래서 주일마다 라디오 전파를 타고 미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그의 노변정담(爐邊情談)을 국정을 이끌어 간 원동력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친구끼리 또는 가족끼리 때로는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모아놓고 옛날 이야기를 하듯 솔직하고도 다정하게 던진 한마디는 국민들의 피부에 닿아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노변정담을 청취한 미국 국민들은 자신들은 혼자가 아니며, 이런 대통령이라면 함께 어떤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루스벨트와는 정 반대의 방법으로 국가를 경영하고 국민을 이끌어 나간 대통령도 있다. 프랑스의 상징 드골 대통령. 그는 화법을 떠나 기자회견 자체를 싫어했다. 1961년 프랑스를 방문했던 미국의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에게 '기자회견 무용론'을 설파했을 정도다. "기자회견을 하지 마세요. 신비로움과 위신이 사라지게 됩니다." 드골은 이 말을 자신의 회고록에도 적었는데 기자회견을 너무 자주 하면 가려져야 할 부분까지 노출되어 지도력에 흠이 간다는 것이다.
43세의 젊은 나이에 적절한 어휘를 골라, 가장 감동적인 메시지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전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했던 케네디가 드골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 돌아간 케네디는 여전히 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즐겼다. 반대로 "권위는 위신 없이 성립될 수 없고, 위신은 세속과의 격리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고 단언했던 드골은 1969년 국민투표에서 패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와중에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어제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면서다. 문 대통령은 공항에서 측근들에게 "조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 대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조 후보자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이, 뜬금없게도 대입제도 문제를 언급한 건 문 대통령의 전형적인 화법이다. 이 발언만으로는 대통령의 의중을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이 탓에 언론에는 구구한 억측이 난무하고, 이를 보고 듣는 국민은 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