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長壽)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불로초에 목을 맨 진시황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평균수명을 늘리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70년대 유행했던 TV 프로그램 중 '장수만세'가 있다. 고령자가 많은 유럽 선진국의 부자 나라를 부러워하면서 만든 프로였고,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볼 정도로 인기도 좋았다. 그때만 해도 장수는 전 연령층이 공감하는 절대적 가치였다. 장수할아버지를 포함한 3대가 함께 TV에 출연해 보여주는 화목한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고령자를 보는 눈이 반드시 곱지만은 않은 듯하다. 한때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2~3일간 앓다가 4일 만에 죽자'는 인기 건배사 '구구팔팔이삼사'가 술자리에서 사라진 지도 오래다. 고령화 사회가 주는 부작용이 생각보다 커서다. 물론 지금도 생명공학의 꿈은 여전히 '장수'에 맞춰져 있다. 그 결과 과학적으로는 120살, 아니 150살까지의 생명연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일부 사람들의 꿈일 뿐, 상황은 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니 국가적으로도 노후 준비에 대한 뚜렷한 대비책이 없는 상황에서 '장수는 곧 재앙'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가고 있어서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2045년부터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고령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때 가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37.0%로 전 세계 201개국 중 가장 높아진다고 한다. 세계 1위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춤을 추는 민족이 장수국가 세계 1위가 된다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가. 아마도 '급격한'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고령화가 서서히 다가오면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라도 가질 수 있지만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보다 고령화가 더 빨리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은 클 수밖에 없다.
오복 중에 으뜸이던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 시대다. 이미 우리 사회가 고령화에 진입해 여러 걸음을 떼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꽤 많다. 하지만 노후대책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열악한 편이다. 치매 등을 앓는 노부모나 배우자를 장기간 간호하다 지친 가족이 결국 살인자가 돼버리는, 고령화 사회에 주로 나타나는 범죄를 지켜보는 심정은 그래서 곤혹스럽고 혼란스럽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