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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였다. 우리만 몰랐다. 1984년 1월 1일 정오. 금시초문의 '위성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묶으며,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한국인이 있었다. 백남준. 그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 뉴욕 공영방송 WNET 스튜디오를 연결해 전 세계로 생방송 돼 2천500만명이 시청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러더'가 TV를 지식과 권력을 집중화시키는 통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을 두고 "절반만 맞았다"고 반박했다.

그로부터 27년 후인 2011년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 백남준과 중국 추상미술의 1세대 자오우지, 한국과 중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두 거장의 작품이 나란히 경매에 올랐다. 두 작가는 50년대 각자 독일과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세계 미술계에 한국과 중국을 알린 이 분야의 개척자다. 이날 자오우지의 유화 '2.11.59'는 57억 원에, 백남준의 설치작품 'TV는 키치다'는 5억8천만 원에 팔렸다. 자오우지는 생존작가, 백남준은 사후 작가였는데도 무려 10배 차이가 났다.

백남준은 미술사에 남긴 업적과 작품성보다 시장에서 현저하게 저평가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른바 '백남준 디스카운트'. 이유는 많다. 우선 작품들이 80·90년대 주로 제작돼 자칫 고장이 날 경우 단종된 TV 모니터나 부품, 수리 전문가를 찾기도 힘들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상당수 작품이 제작됐는데 어떤 작품이 누구에게 판매됐는지 작품관리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보다 56년 전인 1963년 3월 독일 서부의 소도시 부퍼탈에서 누구보다 먼저 TV의 소통방식을 신랄히 비판하는 기념비적인 전시회를 했던 비디오아트 창시자에 대한 대우치고는 너무도 인색한 게 사실이다.

백남준의 예술이 재평가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계적인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 10월 17일부터 작품 80여 점을 선보이는 런던 최초의 백남준 회고전이 열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암스테르담·시카고 등 5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회가 계속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세대를 미리 예견했던 과학·예술·문화 융합의 선구자 백남준. 모국에서의 관심은 여전히 미지근하지만, 문화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남준이 재평가되고 있다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