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간 찬반 명확히 갈려 '격렬논쟁'
딸의 대학입학과정 '옹호 VS 분노'
모두 옳아 입시체제·정책 손질 필요
각종의혹 견딜만한 사람 얼마나될까
정치는 최악 선택 피할 수밖에 없다

월요논단 홍기돈2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지난 몇 주간 어느 자리를 가든지 온통 조국 얘기였다. 어디서든 찬반이 명확히 갈려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 나에게도 파편이 튀곤 하였는데, 파편이 날아든 방향은 언제나 두 갈래였다. 한 가지는 너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물음이었는데,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나로서는 그 물음이 어느 편인지 밝히라는 요구로 느껴지곤 했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은근슬쩍 미끄러져 빠지는 방식을 취했다. 가짜뉴스가 워낙 날뛰고 있는 판이니 지금으로서는 지켜볼 도리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내 태도였다.

기회주의로 내몰릴 위험이 있었으나, 기실 뜨거운 대결 구도 속에서 너무나 많은 말들이 검증되지 않은 채 정제되지 못한 방식으로 쏟아지지 않았던가. 예컨대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국 딸의 한영외고 재학 당시 영어 과목 등급을 들어 논문 영역(英譯)이 가능한지 의혹을 제기했다. 이러한 의혹이 흠집 내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다행히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동양대 총장상을 둘러싼 사실관계는 공수가 바뀌었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발언은 오보이며, 동양대 측에서 정정보도를 요청하였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떠돌았으나, 오히려 이러한 정보가 가짜뉴스였다. 다행히 이 사실도 반나절 내에 드러날 수 있었다.

또 다른 한 가지 물음은 자식 교육에 대한 것이었다. 결혼을 늦게 하여 큰 아이가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니, 다행스럽게도 여기에 대해서는 여유가 허용되었다. "나중에 문체부장관 후보가 될지 모르니 자식 관리 잘해라." 이러한 농담은 웃음으로 끝맺어졌으나, 어쩌면 농담 속에 생각해봐야 할 주제가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대학교수는 기득권이며, 기득권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펼쳐놓을 비장의 카드를 몇 장 쥐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자식 관리란 그 카드를 사용하지 말라는 조언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조국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딸의 대학 입학과정에서 위법사항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대학 입학은 법이 허용하는 틀 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대학생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한 편법(便法)은 오직 한정된 기득권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불공정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시 기회주의자처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옹호하는 논리도 옳고 분노하는 감정도 옳다. 양자가 모두 옳은 까닭에 대학 입시체제는 대폭 손질되어야 한다. 대학 입시뿐만이 아니라, 대학을 둘러싼 정책 또한 대폭 수정되어야 하며,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자체까지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와는 별개로, 그동안 조국이 주장했던 바가 그의 삶과 퍽 괴리되었다는 사실은 여실히 드러났다고 해야겠다.

애매모호한 자리에 앉아 논란을 지켜보면서 발터 베냐민의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를 다시 읽었다. 베냐민은 자본주의를 '순수한 제의종교(祭儀宗敎·Kultreligion)'라고 파악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자본을 둘러싼 제의와 관련을 맺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 제의는 꿈도 자비도 없이 영원히 지속된다. 내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죄를 씻지 않고 오히려 죄를 지우는 제의의 첫 케이스이다. (중략) 죄를 씻을 줄 모르는 엄청난 죄의식은 제의를 찾아 그 제의 속에서 그 죄를 씻기보다 오히려 죄를 보편화하려고 하며, 의식(意識)에 그 죄를 두들겨 박고 결국에는 무엇보다 신 자신을 이 죄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신 자신도 속죄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과거 사노맹 투사였던 조국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냉혹한 자본주의의 아귀에 잡아먹히고 만 것은 아닐까.

그동안 언론은 융단 폭격하듯 조국에 관한 온갖 의혹을 쏟아 부었다. 한국과 같은 천민자본주의 국가에서 그와 같은 의혹을 견디어낼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득권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국 지지자들이 인터넷 실검으로 나경원 자녀 의혹, 나경원 사학재단 비리, 나경원 소환조사, 황교안 자녀 장관상 등을 띄운 까닭은 이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터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정치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 여부는 그러한 방향에서 판단해야만 하나. 어찌할 도리 없이, 그러한 선에서 나의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