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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온통 핏빛이었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일렬로 늘어선 배들이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을 내면서 달려들자 만(灣) 끝까지 쫓겨 더는 도망치지 못한 돌고래들은 그물에 걸려 울부짖었다. 어부들은 우선 수족관용으로 판매할 새끼 돌고래를 골라낸 후, 쇠 작살로 내리찍고 갈고리를 휘둘렀다. 꼬리를 잡고 칼로 찌르는 어부도 있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관객은 숨을 멈췄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해서다. 2009년 제82회 아카데미 영화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 루이 시호요스 감독의 '더 코브 (The Cove) : 슬픈 돌고래의 진실'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일본의 와카야마 현 작은 어촌 다이지(太地)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돌고래 사냥을 다뤘다. 다이지에선 매년 9월부터 6개월간 돌고래 포획과 학살이 벌어진다. 카메라는 돌고래들을 해안가로 몰아넣고 무자비로 도살하는 이른바, '몰아잡기(drive hunt)' 방식의 사냥법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았다. 제작팀은 지역주민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600여 시간에 담아 그중 90분으로 정리해 공개했다. 영화가 부른 파장은 컸다. 매년 100여 개국에서 다이지의 돌고래 포획에 대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국제포경위원회(IWC)는 1986년부터 포경을 금지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아랑곳없이 고래를 잡는다. 국제사회와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1988년 상업 포경 중단을 선언했으나 연구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매년 수백 마리의 고래를 잡아왔다. 그러다 지난 6월 IWC에서 공식 탈퇴하고 본격적으로 상업적 포경을 재개했다.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서만 고래를 잡는다며 국제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말이다.

여론을 비웃듯, 지난 1일부터 다이지에선 어김없이 돌고래 사냥이 시작됐다. 국제 여론 악화와 수요 감소 등으로 점차 포획 수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올해도 최소 1천여 마리의 돌고래들이 포획되거나 죽음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포획과 살육이 중단되지 않는 건 아직도 다이지 돌고래를 수입하려는 국가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와 함께 다이지로부터 돌고래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 중 하나다. 영화 코브의 감독 시호요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래가 사라지면 지구가 멸망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