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된 현대사속 김수영의 삶 그려
혁명·쿠데타 등 고통의 시절 공감
예리한 풍자 탁월 박근형 객원연출
이범우 등 배우들 호연에 관객 갈채
인천시립극단이 정기적으로 진행 중인 '창작극 프로젝트'의 네 번째 결과물로 관객과 만난 '거대한 뿌리'가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8월 31일부터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시작된 공연의 마지막 무대였다.
김수영(1921~1968)이 쓴 시의 제목이기도 한 '거대한 뿌리'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노래한 김 시인의 삶을 그렸다.
인천시립극단은 극작가 겸 연출가인 박근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객원연출로 초빙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창작극을 완성했다.
예리한 현실풍자와 조롱으로 충격을 던지며 한국사회 문제들을 날카롭게 진단해 왔던 박근형 연출과 인천시립극단의 만남은 공연 전부터 연극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작품은 1968년 6월 15일 늦은 밤 교통사고를 당한 시인이 사경을 헤매는 몇 시간 동안을 담았다. 적십자병원 중환자실에 누운 그는 세상을 떠나기 까지 굴곡진 인생을 되돌아본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던 시기와 해방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 시작된 미 군정과 한국전쟁,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경험,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시작된 현대사를 거쳐 마지막까지 그를 붙들고 있던 것은 4·19혁명의 정신이었다.
작품은 시인 김수영의 삶과 예술을 생생하게 압축해 표현했다. 그와 함께 굴절된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무대 위에서 흥미롭게 펼쳐졌다.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세대간, 지역간의 진통과 청산되지 못한 그릇된 역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극에서 김수영은 "죽음을 눈 앞에 둔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다 부질 없는 세월이었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에 맞서 시위를 하던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 바다에 떠오르자 시대와 반역의 세월에 분노하며 울분을 토했던 1960년은 내 인생에 가장 뜨거웠던 인생의 황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본다.
그 후 김수영은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문학을 바라봤으며, 박정희의 쿠데타로 다시 겨울공화국으로 전락한 세상을 조롱했다. 부정한 시대를 한탄하며 시를 무기 삼아 세상과 맞서지만, 언제나 역부족인 자신을 학대했다.
김수영을 연기한 이범우 배우를 비롯해 18인의 인천시립극단 배우들은 20세기 중반의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과하지 않은 감정의 흐름 속에서 연기했다.
그로 인해 암울했던 시절, 가난의 시절, 고통의 시절을 겪은 아버지 세대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무대의 막이 내리고, 관객들은 부정한 시대를 한탄하며 시로 세상에 맞섰던 시인의 삶을 일깨워준 배우들에게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