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시작된 이탈리아의 부정부패 척결 작업인 마니 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는 '사정(査正) 혁명'의 기념비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이탈리아 정계와 재계의 검은 커넥션을 겨냥한 전대미문의 수사를 통해 6천여명의 정재계 권력자들이 수사를 받았고, 2천993명이 부패혐의로 체포됐다. 두 전직 총리는 타국으로 망명하거나 비리혐의가 드러나 법대에 섰고, 현직 총리마저 비리혐의로 사임했다. 정신병원엔 노이로제 증상을 호소하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마니 풀리테를 주도한 안토니오 피에트로 검사는 이탈리아 통일의 기초를 세운 주세페 가리발디 이후 최고의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사정 혁명의 결과는 놀라웠다. 비례대표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는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고, ㎞당 800억리라였던 지하철 공사 비용은 마니 풀리테 이후 440억리라로 떨어졌다. 하지만 권력의 반격도 필사적이었다. 마니 풀리테 검사들을 향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들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고 여론전을 벌이고, 여자관계 등 사생활을 캐내 도덕성에 상처를 입혔다. 반격은 주효했다. 검사들은 반발해 사표를 던졌다. 살아있는 권력이 결국 마니 풀리테 검사들을 이긴 것이다. 그 결과 지금껏 이탈리아는 유럽 최악의 부패국가라는 수렁에 빠져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한국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정권의 핵심인물인 조국과 그 일가를 향한 전격적인 수사에 검찰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윤석열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 보기 드문 검사다.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으로 박근혜 정권에 치명타를 가하고, 당시 법무장관 황교안이 부당한 수사 지휘를 했다고 폭로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에서는 수사팀장으로, 문재인 정권에서는 중앙지검장으로 전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고 마무리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소신에 반해 대통령은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그런 윤석열을 향해 여권 전체가 '정치 검찰' 낙인 찍기에 나섰다. 급기야 대통령은 9일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했다. 윤석열의 검찰은 직속 장관의 부인을 기소하고, 장관 가족펀드 관계자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셈이 됐다. 이제 후보자가 아닌 장관을 지켜야 하는 살아있는 권력의 반격과 견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윤석열의 어깨에 대한민국 검찰의 운명이 걸렸다. 꼿꼿이 진실의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마니 풀리테 검사들처럼 사표를 던지면 안된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