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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의 맛이 전 같지 않다. 밍밍하다.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다. 'R(경기침체)의 공포'니, 'D(디플레이션)의 공포'니 하는 암울한 경제 탓이다. 날씨도 무시할 수 없다. 너무 덥다. 추석인데 낮 기온이 26도 전후다. 지난 추석엔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했었다. 반바지를 입어도 되는 추석. 낯설다. 기후 온난화가 우리의 추석 명절 한 부분을 망치고 있다. 그래도 추석인데, 선선한 가을바람 정도는 불어줘야 한다. 그 바람을 맞아 너울거리는 황금 들판에서 추수가 시작되고, 넉넉한 인심이 영그는 것이다. 그런데 날씨가 받쳐 주지 않는다.

귀성객이 줄었다는데도 올 추석 3천만 명의 '민족대이동'이 예상된다. 모처럼 가족 친지들이 모였으니 집집마다 웃음꽃이 피어날 것이다. 아무리 '혼족'이 대세여도 '혼심'보다 함께 모여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공동체 의식은 확인되고 민심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이도 '옛말'이다. '왔소. 갔소'에 무엇보다 서로 마음을 굳게 닫고 있다. 형제지간에도 웬만해선 속마음을 열지 않는다. 대화 단절, 소통 부재다. 슬프다.

그러다 보니 민심을 헤아리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오랜 기간 신문 밥을 먹었지만 요즘 같아서는 무엇이 민심인지 꼭 짚어 말할 수가 없다. 그나마 민심을 알 수 있는 게 여론조사인데, 이번 조국사태 동안 하루가 멀다고 쏟아진 여론 조사는 오히려 조사기관의 불신을 불러왔다. 하루 사이에 여론이 5%씩 널뛰기를 하는가 하면, 여론 조사기관에 따라 10~15% 차이가 나자 국민이 돌아섰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선거에 패한 후 꼭 하는 말이 있다. "민심을 너무 몰랐다." 선거 전엔 이해할 수 없는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이것이 민심"이라고 우기던 그들이다. 평소엔 민심이란 것에 별 신경 안 쓰다가 큰코다치고 난 후 비로소 민심을 받드는 양 수선을 떤다. 그리고 금방 잊어버린다. 정치인들은 늘 그렇다.

한 달여 간 진행된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놓고 우리 사회는 처참하게 망가졌다. 성한 곳이 없다. 모두 어디 하나쯤은 부러졌다. 갈라진 진영에서 서로 쏟아낸 증오와 멸시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깊고 넓은 상처가 생겼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무색하다. 정말이지 이런 추석은 난생 처음이다. 그러니 추석이 끝난 후 민심이 어디로 튈지 너도, 나도 아무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