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이기들 편하고 필요하지만
얽매여 살아 정작 중요한것을 잃어
인터넷 없이 살고 종이·연필 쓰며
걸어서 마트가기·채소 키워먹기…
소소한 일로 삶은 더 단단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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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바람 숲 그림책 도서관장
도서관 사무실이 새로 지은 옆 건물로 옮겨가면서 인터넷 이전 신청을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다고 하여, 인터넷 사용이 필요할 때면 이전 건물을 왔다갔다 하면서 업무를 봤다. 불편했지만 일주일 정도는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인터넷을 이전 설치하러 온 기사는 기존에 사용하던 인터넷 선로를 사용할 수 없고 대규모 공사가 필요하니 다른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대규모 공사라는 말에 당분간은 인터넷을 편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런데다 때마침 태풍 링링이 왔다. 강화도 전역은 정전되었고 빠르게 복구된 곳도 있지만 우리 마을은 6시간 정도 정전이 이어졌다. 정말 무인도에 고립된 느낌이었다. 막막한 상황에서 전화도 불통이 되었다. 전기, 인터넷, 전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인터넷도 전화도 없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처음 맞닥뜨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도서관 프로젝트로 매년 방문하고 있는 라오스 오지에서도 이런 경험은 하지 못했었다.

어둠 속. 익숙하고 편리한 문명들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심코 '커피라도 한잔 마셔야겠다.' 생각하고 일어섰으나 그것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멍하니 앉아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됐다. '이런 상황이 길어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나는 제일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면 더 답답해질 것 같지만 의외로 알 수 없는 해방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안겨주고 있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거기에 얽매여 살아가며 정작 진짜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정전과 통신 두절 속에 잠시 머물면서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안지혜 글·김하나 그림/창비'을 떠올리게 됐다. 도시의 대형마트에서 비닐봉지 한가득 음식을 구매해 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고 밤새 컴퓨터 게임을 즐겨 하던 이들이 인터넷도 전기도 수도도 없는 숲으로 가서 살게 된 이야기이다. 그들은 직접 물을 길어와 장작불을 지펴 밥을 짓고 텃밭에서 채소를 뜯어 반찬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만든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도시에서 편리하게 살던 그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건 이후, 산과 바다가 오염되고 사람과 동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는 당장 전기 사용을 중단하겠다는 결심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전기랑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게 자랑'이며 '겨울에는 물이 꽁꽁 얼어서 불편할 때가 많지만 온 세상이 하얗고 고요해서 무척 아름답다'고 말한다.

집안을 둘러보면 컴퓨터를 시작으로 핸드폰, 전기포트, 청소기, 세탁기 등 많은 전자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 중 한 가지만 없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흐름 속에서 아직도 육필 원고를 고집하는 작가들이 있고, 그림책 속 주인공처럼 숲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고, 일상생활 속에서 전기나 화학물질을 적게 쓰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 마을에도 생활 속 적정기술을 함께 나누는 카페가 생겼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간단히 만들어 사용하고 에너지와 화학용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 같다.

이번 링링과 함께 온 정전과 통신 장애를 겪으면서 '일상생활에서 전기나 통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면 어쩌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시작되었다. 일단은 컴퓨터 자판보다는 종이와 연필 사용을 많이 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인터넷 없이 지내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마트에 갈 때는 걸어가기, 텃밭에서 채소 키워먹기 등등 가볍게 시작해보기로 했다. 아주 소소한 일이지만 우리 손과 몸을 움직이며 느리게 걸어가는 생활 방식이 조금씩 우리 삶을 단단하게 채워 주리라 기대한다. 인간이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 때로는 침묵과 고독, 느림 속에서 서두르지 않고 흔들림 없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야겠다.

/최지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