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손 초이 일리야 세르계예비치 개강 앞두고 입국
안중근 의거 도운 연해주 한인사회 지도자의 '핏줄'
기념사업회 포함 지역서 학비·숙소 등 도움주기로
안중근 의거를 도운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1860~1920) 선생의 후손이 인천대학교 어학원에 입학해 한국어를 배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나고 자란 최재형 선생의 후손이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인천 지역사회가 물심양면으로 돕기로 해 눈길을 끈다.
최재형 선생의 4대손인 초이 일리야 세르계예비치(17) 군은 추석 연휴 첫날 어머니와 함께 입국해 15일 오전 인천대를 찾았다. 이달 18일 개강하는 인천대 글로벌어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다.
최용규 인천대 이사장은 올해 초 최재형 선생 직계 후손인 일리야 군의 소식을 접하고,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에 "일리야를 인천대로 데려와 독립유공자 국비 장학생으로 키우고 싶다"고 제안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일리야 군이 1년간 어학원에서 공부해 내년에는 인천대 학부생으로 입학하는 게 목표다.
함경북도 경원 출신인 최재형 선생은 어릴 적 러시아 연해주에 정착해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러시아 한인사회 지도자이자 교육사업가였다.
러시아 한인들은 최재형 선생을 '페치카(난로)'라고 부르며 의지했다. 그는 1908년 안중근 등과 의병본부를 설치해 군자금을 댔다.
이듬해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러 갈 때까지 최재형 선생의 집에 머물며 사격연습을 했다고 한다. 최재형 선생은 1920년 4월 시베리아에 들어온 일본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하기 전까지도 연해주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후 후손들은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모스크바나 중앙아시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고, 최재형 선생은 후손들에게조차 오랫동안 잊혔다.
'초이'(최)라는 성을 물려받은 일리야 군은 고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이야기를 국내에서 최재형이 재조명된 최근에서야 알았다고 한다.
증손자인 일리야 군의 아버지 세르게이(42) 씨도 마찬가지였다. 일리야 군은 "조상이 한국 출신이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한국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며 "이제부터라도 한국에서 뿌리를 찾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리야 군은 항공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일리야 군이 인천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나서고 있다. 인천의 한 사업가는 일리야 군이 1년 동안 지낼 숙소를 학교 근처에 마련해 주기로 했다. 인천대 어학원생은 규정상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최용규 이사장은 "일리야 군이 인천에서 공부한다는 얘기를 들은 여러 인천시민이 돕기로 했다"며 "나라를 지킨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는 당연히 더 많은 것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