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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 금기어로 '조국'이 꼽힌 적이 있다. '조국 정국'을 둘러싼 의견차이로 화기애애했던 술자리가 파탄(?)이 나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는데, 피를 나눈 가족들이라 해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추석이 지나고 나서는 '삭발'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양상이다. 다행히 서로 등 돌리고 헤어지는 '조국 논쟁'보다는 강도가 덜하다. 하지만 삭발 정치인들의 '결기'에 대한 평가는 희석되고 정치는 희화화되기 일쑤다. 삭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톱의 네일아트에 관심을 갖는 격 아닌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과연 삭발을 할 것인지 여부도 안줏거리다.

이 대목에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다룬 SF작가 '테드 창'의 단편이 떠오른다. 소설에서는 버튼과 LED등이 달려있는 예측기라는 기계가 등장한다. 이 예측기는 버튼을 누르기 1초 전에 불빛이 반짝인다. '네거티브 타임 딜레이'란 회로가 장착돼 1초 전의 과거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예측기를 속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장난감 같은 기계가 불러오는 파장이 엄청나다. 상당수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다시 말해 결정론을 신봉하게 되면서 선택행위 자체를 거부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무동무언증에 빠져 음식도 섭취하지 않는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소설 속 설정이기에 망정이지 내용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위안이라면 결정론과 관련해 모든 것이 결정돼 있으니 미래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철학자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 대표는 제대로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철학적 사유가 아닌 정치역학적으로 볼 때 '정치예측기'는 삭발이라는 결정론적 틀을 갖추기 위해 점점 충전되고 있는 것 같다. 당 내의 삭발 요구 등으로 볼 때 나 대표의 선택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 대표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자유의지의 가치가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정치권이 한번 낭송해보기를 권한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