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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미제사건 형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TV 드라마 '시그널'에서 프로파일러 박해영은 '연쇄 살인'의 조건으로 "최소한 3명의 피해자가 발견되고, 살인사건 사이에 냉각기가 있으며 서로 분리된 상황에서 피해자가 살해된 정황이 확실할 때"라고 정의한다. 1986년 9월 19일 오후 2시, 하의가 벗겨지고 목이 졸린 채 숨진 이모(71) 씨가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에서 발견됐을 때, 이를 보도한 언론이 단 한 곳도 없었던 것도 어쩌면 이와 무관치 않다. 더 변명하자면, 5일 전 5명이 사망한 '김포공항 국제선 대합실 폭발사고'와 다음날 개막하는 아시안 게임으로 이 사건을 언론은 주목하지 못했다.

'선보러 집 나갔던 처녀 수로에서 알몸 시신으로…. 10월 23일 오후 2시 30분께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콘크리트 용수로 내에서 박모(25) 양이 알몸으로 숨져 있는 것을 근처에서 콩을 뽑던 윤모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는 기사가 24일 경인일보 사회면에 2단 기사로 실렸다. 2차 희생자였다. 그러나 더 이상의 후속 보도는 없었다. 이때까지도 이 사건이 영구 미제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1986년 12월 12일 3차 사건이, 14일 4차 사건이 이틀 만에 발생했다. 하지만 3차 사건의 시신이 4개월 뒤인 1987년 4월 23일, 4차 사건은 1주일 후인 12월 21일 발견돼 경찰과 언론이 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모방사건인 8차를 제외하고 다섯 차례 더 발생했지만,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2차부터 후속 보도를 좀 더 충실히 했다면 사건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후회'는 경인일보 편집국엔 뗄 수 없는 큰 짐이었다.

그 후 2001년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만든다며 경인일보를 찾았을 때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픈 부채의식을 조금 덜어내도 되는 것일까. 살인죄로 부산 교도소에 수감 중인 56세 이모씨의 DNA가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등 3건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 하늘이 도운 거다.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 사건 해결을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지만, 33년 만에 용의자를 특정한 쾌거를 거둔 경기 남부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