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물리학 교양서를 펴낼 때 '수학방정식 하나 넣을 때마다 독자가 천 명씩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물리학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고, 한편으로는 방정식 없이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물리학 중에서도 '양자얽힘', '불확정성' 등 난해한 용어들로 가득 찬 양자역학은 더할 나위 없다. 심지어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조차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일반인, 특히 비(非)이공계 출신은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방정식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교양서 저자들 덕에, 양자역학이 그렇게 낯선 용어로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대중문화 영역인 영화에서 양자역학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이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양자역학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키 역할을 한다. '양자 수트'를 장착한 어벤져스가 시간을 거슬러가는 게 영화의 반전이다. 국내에서도 '양자 물리학'이란 제목을 단 영화가 25일 개봉했다. 그런데 줄거리를 보니 학구적인(?)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의 양자역학적 세계관이 스크린에 조금 비치는 정도랄까. 하기야 영화 '기생충'에서 회충 한 마리 보지 못했으니 이 영화제목 또한 은유일 듯싶다.
사실 전자 등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양자역학이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T강국인 우리나라야말로 양자역학을 발전시키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구글이 양자컴퓨터 성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하고 IBM이 53큐빗짜리 양자컴퓨터를 공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등 외국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데 국내에서는 양자역학과 관련한 낭보를 듣기 어렵다. 오히려 양자암호통신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될 처지라는 부정적인 뉴스가 관련 전문지의 한 구석을 차지한다.
'어벤져스'가 개봉했을 때 관객들 사이에서는 '양자역학을 알리기 위한 영화'라는 평이 나온 적이 있다. 영화 '양자물리학'이 비슷한 기여를 한다면 나름 의미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