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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스티브 배넌 미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언론에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내용의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해 큰 파문이 일어났다. 배넌은 책임을 물어 곧바로 해임됐지만, 트럼프 정부 아래 주한 미군철수가 거론됐다는 점에서 우리의 충격은 컸다.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동맹 70여년 동안 수없이 거론됐다. 주한미군 철수론자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11월 헨리 키신저에게 "이제 주한미군 병력을 줄일 때가 됐다. 철수 실행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1970년에는 주한미군 감축 내용을 담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그리고 1971년 6월 한국군 현대화를 조건으로 주한미군 1개 사단의 병력 2만명이 처음으로 철수했다. 이때부터 주한미군의 수는 꾸준히 줄어 2006년 이후 지금까지 2만8천명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지미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국의 인권상황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때문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실제 카터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 이유는 한국의 방위력이 크게 증강돼 미군이 한반도에 있어야 할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철수 계획은 의회의 반대로 백지화됐지만, 실제로는 북한 지상군 규모가 남한보다 크게 앞선다는 '존 암스트롱 보고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

미 워싱턴 정가에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을 방문한 존 햄리 미 전략 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이 24일 최종현 학술원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북한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더는 주한미군이 필요 없다는 기류가 미 의회와 외교가에 확산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론은 한미관계가 삐걱거릴 때 늘 등장했던 메뉴다. 한미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행보는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의 탄핵조사를 받는 처지에 놓인 트럼프다. 재선을 위한 북한과의 대화에서 주한미군이 걸림돌이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트럼프다. 표에는 동맹도 없다. 이제 우리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자강(自强) 못하는 국가는 미래도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