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등 손꼽히는 경우도

1900년대 초 레코딩 기술이 크게 발달했다.
그때 활동하고 있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이나 20세기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연주해 음반으로 남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오래 전 유명 작곡가들의 작품이 그들의 손에 의해 연주된 것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자작자연이란 그리 놀랍고 별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금에서야 전문 연주자와 작곡가 사이에 어느 정도 구분이 생겼지만, 예로부터 많은 음악가가 연주(혹은 지휘)와 작곡을 병행했다. 녹음되지 못했을 뿐이다.
바흐는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 겸 합창 지휘자였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자신의 작품을 연주했다.
쇼팽과 리스트는 생전에 피아니스트로 더 큰 명성을 얻었으며, 이는 라흐마니노프까지 이어졌다. 또한 멘델스존과 말러, R. 슈트라우스는 탁월한 지휘자로 인정받았다.
음악은 작곡가 자신이든, 전문 연주가이든 어느 누군가의 연주를 통해 재현된다. 이때 만일 창작자와 연주자가 동일인이라면 작곡 당사자인 만큼 완벽한 형태로 재현해내지 않겠느냐는 점에서 기대하게 된다.
애호가들은 기대와 호기심으로 자작자연 음반을 접했다.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니스트로 자신의 협주곡을 연주하고 R.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교향시를 연주한 음반들은 연주력과 곡 해석 측면에서 하나의 모범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러한 예외를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통설은 '자작자연은 보잘 것 없다'는 쪽이다. 비록 자신이 만들어낸 창작물이어서 작품에 대해 가장 잘 알지만, 표현의 치밀함이나 섬세한 조형능력은 트레이닝을 거친 전문 연주자에 미치지 못했다.
충실한 작곡가의 역량과 달리 작품을 연주해 청중의 감동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최고 지휘자 반열에 오른 인물인 오토 클렘페러, 레너드 번스타인, 피에르 불레즈가 들려주는 자신의 작품들은 듣는 이의 기대에 부합하는 최고의 연주로 꼽힌다.
이 밖에도 스트라빈스키와 코플랜드(이상 지휘), 쇼스타코비치(피아노)가 연주하는 자작들도 '작곡가의 연주가 감상용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선입견을 걷어내게 하는 명곡들이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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